어머니 마음의 불을 켜러 가고 있어요
어머니 마음의 불을 켜러 가고 있어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윤선희/수필가

어느 덧 마흔이 넘은 나이가 되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난 내 나이를 잊어버렸다. 아니 잃어버렸다가 맞겠다. 무의미한 날들의 연속. 때론 의식적으로 의미를 주었던 날들 앞에서 나에게 웃음도 선사해 주고 싶었고, 추억이란 이름도 선물해 주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권태로운 일상에 또 다시 무기력해지는 현상과 마주하게 된다. 어느 날 이기호의『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라는 책을 보았다. 제목처럼 모든 일에 대해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았던 까닭일까? 자력처럼 그 제목에 이끌렸다. 하지만 그 책은 제목과 달리 내 심장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던 나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상처를 건드렸다. 책속에「불 켜지는 순간들」이란 짧은 소설은 나의 마음을 흔들어 되기에 결코 짧지 않았으며, 나의 부끄러움을 끊임없이 들추어내고 있었다.


두 아들과 아내에게 부끄럼 없는 아버지와 남편으로 살았던 김길부는 죽어서 저승에 도착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인도하는 304호실에 들어갔다. 그곳은 커튼이 쳐진 창문과 잘 세탁된 시트가 깔린 침대, TV와 욕실이 딸린 방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불이 꺼졌다. TV소리는 들렸지만 화면은 나오지 않았다. 수십 일이 지난 어느 날 불이 켜졌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럽니까?”


검은 양복의 사내는 이 벌은 선생의 어머니께서 주는 것이라고 했다.


“불로 요양원 304호. 선생은 어머니께 얼마 만에 한 번씩 찾아갔습니까? 딱 그 주기에 한 번씩 선생 어머님 마음에도 불이 켜졌겠지요.”


또 다시 불이 꺼졌다.


지금 나의 어머니는 어두운 공간에 갇혀 있다. 어머니 마음에 불을 켜 주어야 할 텐데 자꾸 미뤄지고 있는 순간마다 이 소설이 떠오른다. 누가 보지 않는데도 얼굴이 붉어진다. 아니 심장이 먼저 붉어지고 있었다.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한 채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코를 통해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어머니를 통해 알았다.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는 식물처럼 어머니는 공급당하고 있었다. 어머니 몸은 누워있는 시간만큼 사라져가고 있었다. 남은 시간만을 견디는 삶, 그 삶에도 불이 켜지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을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들의 소리를, 그리웠던 가족의 숨결과 체취를….


감히 노여움조차 표현 못하고,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다. 빨리 당신 손을 잡아주기를….


하지만 나는 가끔 어머니의 손을 외면하고 싶었다. 감긴 눈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잘 세탁된 시트가 깔린 침대조차 거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보내고 싶지는 않다. 영원한 이별 앞에서는 외면했던 손도 놓고 싶지 않고, 벗어나고 싶었던 감긴 눈 속에서 눈동자도 확인하고 싶고, 거부하고 싶었던 침대시트도 부여잡고 싶다. 이 이중적인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오늘은 제사가 있어서 큰댁에 갔다. ‘나도 더 늙어지면 자식들 편안하게 요양원에 가야지’하소연 하던 큰어머니께서 뜻밖에 말씀을 하셨다.


“요양원이 없어지면 좋겠다.”


어른들에게 요양원은 노년을 준비하는 필요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외로움을 처절하게 견뎌야 하는 공간이며, 자식들에게 외로운 마음조차 드러내지 못하는 공간이었다. 움직일 수 있기만 하다면 쳐다보기 싫은 장소였다. 상처 받아도 자식과 같이 있고 싶은 욕망은 젊은 시절 사랑하는 연인과 같이 하고 싶은 열망보다 큰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살고 있는 오늘이 인생 가장 큰 축제일이며, 언제나 그 불이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길 바라는 삶이 행복이라는 것, 가족과 걷는 모든 순간이 즐거운 소풍이라는 걸 잊지 않는다면 권태롭다고 우겨 던 일상들이 각자의 빛을 찾아 갈 것이다.


어머니 힘내세요. 내 손이 당신 손을 잡고, 당신 심장에 내 호흡을 불어 넣으면서 함께 바라보는 삶속에서 행여 불이 꺼지는 순간이 찾아와도 그 따뜻함을 기억한다면 모든 날들이 그리 춥지는 않을 거예요. 당신과 나의 거리는 지금 어둠속에 있지만 그 따뜻했던 순간들을 기억하세요. 어머니 마음의 불을 켜러 가고 있으니까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