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 흐르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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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노자가 말하기를,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善)의 표본이라” 했다.

“上善若水(상선약수)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오) 故幾於道(고기어도).”―최고의 선은 물과 같아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거(居)하므로 도(道)의 정신과 같다.―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장자가 당랑거철(螳螂拒轍), 버마재비가 앞발을 들어 수레바퀴를 멈추게 하듯 분수를 모르고 대항하는 교만을 꾸짖었다면, 노자는 인간이 물처럼 겸손해 다른 천연계(天然界)와 다투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따뜻하게 포용함을 물로 묘사했다. 큰 바위를 뚫을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의 힘만이 가능하다는 설파다. 공감한다.

부드러움은 약한 게 아니다. 그것은 종당에 강직함을 이기는 것이고, 유연한 게 견고한 것을 이기므로 자연에 순응한 무위(無爲)·무상(無常)의 삶이야말로 매우 강건하고 위엄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도는 무형, 물은 유형이나 작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항상 낮은 곳에 처해 도에 가깝다 함이니, 상선약수 곧 대도(大道)다.

좀 더 구체화하면, 물처럼 산다는 것은 ‘나를 죽이는 것’, 에고(Ego, 자아) 곧 ‘내가 이런 존재다’라는 생각을 죽임으로써 이르는, 걸림도 다툼도 없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뜻한다. 에고가 거짓 자아라면, 진정한 자아는 에고 없는 ‘참 나’다.

정치인이 입으로 말하는 ‘상선약수’는 오해의 여지가 상존해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는 수가 있다. 한마디로, 물은 위에서 아래로, 낮은 데로 흐르기 때문이다.

만약, 물이 아래로 흐르지 않고 하늘로 솟구친다면 그것은 불의 힘이 작용할 때다. 특히 정치인이 말하는 물은 ‘물로 위장된 불’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집권 여당이 산산이 흩어지면서 야권의 존재감이 썩 실팍해졌다. 이전에 없던 모양새다. 이런 흐름 속에 얼마 뒤가 빤히 보인다는 듯,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으로 들뜰 수 있다. 실제 그런 분위기다.

탄핵 뒤 이어질 대선 국면이 이합집산으로 새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바로 연출로 이어질 테다. 물이 급살로 굽이쳐 흐르고 있다. 상수엔 변수가 있는 법이라 추측이 무성하다. 물밑에서 용틀임하는 잠룡들의 정치적 셈법도 여러 경우의 수를 읽으며 가파르게 돌아간다.

혹자는 이미 챔피언 벨트를 찬 것처럼 섣부른 수사(修辭)와 부질없는 화법으로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국민들에게 진중하지 못한 모습으론 거둬들일 잇속도 크지 않을 것이다. 촛불을 말하지만, 뒤에서 따랐을 뿐 누구도 촛불을 이끈 사람은 없었다. 촛불 민심이 마치 제 편이거나, 자신이 속한 정치집단의 뒷심이기라도 한 양 도를 넘는 언행에 혹여 식자들이 실소(失笑)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데 어수선한 이때, 불세출의 인물이 탄생하려나. 기대는 저버리지 않지만, 입이 하나에 모아지고 있다. ‘과연 이 나라에 인물이 있는가?’ 진즉 인물이 없다면 작은 일이 아니다.

그래도 시대가 지도자를 내놓을진대, ‘상선약수’, 아래로 낮게 흐르는 물처럼 덕(德)을 지닌 인물이 나오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기다린다, 아래로 흐르는 물이 제발 ‘불로 가장한 물’이 아니기를. 바라건대 요번에야말로 우리 앞으로 자신을 희생할 대도(大道)에 선 인물 하나 뚝 떨어지기를.

오늘도 물은 아래로 낮게 흐르고 있다. 그 소리에 귀 맑고 눈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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