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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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말에 얼이 빠지면 껍질만 남는다. 영혼이 떠나간 빈 집이다. 텅 빈집에 바람만 들락거리니 청승맞다.

말은 사상과 감정을 주고받는 전달수단에 그치는 보편적 기능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을 사람으로 이끌어 우리가 도달하려는 최고의 가치 창출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 한데 그 실현은 말을 주고받은 관계에서 인격적 만남과 영혼의 교감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니까 말엔 엄연히 상대가 있으므로, 의당 예도와 품격을 지니게 마련이다. 삼가고 아끼고 절제할 때 비로소 사람의 말이다.

말은 시대와 사회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난세엔 어수선해 그런 사회를 반영하면서 말도 난잡하다.

요즘 우리 사회가 탄핵에서 대선 정국으로 가면서 감정선이 탱탱해진 탓인지, 허드레 말들이 난무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거친 말들이 순화되거나 여과되지 않은 채 마구 쏟아져 나와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무분별한 말을 대하면 여간 민망하지 않다.

‘꼼수, 빨갱이, 종북 첩자, 패거리, 할복, 악성종양….’ 어디 허투루 입에다 올릴 수 있는 말인가. ‘꼼수’란 말을 심상히 하고 있는데, 수단 방법이 쩨쩨하다는 본디 뜻이나 알고 쓰는지 모르겠다.

‘패거리’만 해도 그렇다. 아주 질이 나쁜 패(牌)란 뜻으로 품위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비속한 말이다. 더욱이 ‘할복(割腹)’은 배를 가른다는 끔찍한 말이고, ‘악성종양’은 암(癌) 덩어리란 말 아닌가. 도대체 어디 갖다 대어 함부로 쓸 말들이 아니다.

정치 쪽의 일이라 짜장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노릇이되 이 경우, 단호히 꺼내 들고 싶은 말이 있다. ‘지지(知止)’, 그만둘 것을 앎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라 했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만둘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곱씹을 일이다.

책임질 사람이 책임질 줄 알아야 하고, 갈 때 다 버리고 떠나면 멋지다. 감정을 좀 누그러뜨리고 걸러내 쓰면 좋은 것인데, 앞뒤 가리지 않고 뱉어대니 미상불 그냥저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나쁜 말은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들쑤셔 격하게 만든다. 말이 자극을 받으면 듣는 이를 분노케 하므로 무섭다. 죽자 사자로 흐르는 속성이 있으니 하는 말이다.

더욱 우려할 게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일이다. 어제의 동지가 불구대천지 원수가 되는 게 한순간이다. 이렇게 되면 세상이 흉흉해진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있으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그리워하지 못할망정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천국이 딴 데 있지 않다.

요 며칠 전, 강원도 윤용선 시인에게서 시집을 받았다.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놀라운 게, 시인의 시가 시종 ‘사람’을 쓰고 있지 않은가. 109명의 시인 작가를 시화(詩化)하고 있다. 이런 시집은 난생 처음이라 더욱 놀랐다.

뒤표지에 한 시인의 추천사가 실려 있었다. “의지하고 자신을 인정해 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살맛 나는 세상이라고 한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 살아온 윤용선 시인의 이번 시집은 그런 의미에서 큰 울림을 준다. 사람이 그리운 때마다 사람과 교유하는 그는 사람 부자다.” 시집 속에 ‘말다운 말들’이 강물로 소리 내어 흐른다. 보고픈 사람, 그리운 사람에게 건네는 말처럼 정겨운 게 어디 있으랴.

우리는 일하면서 행복해지기 위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사람과 만나 사람다운 말을 주고받으면 얼마나 살가울 것인가.

강추위 탓인지 사람이 몹시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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