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칸 기와집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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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 연동주민센터
조선 시대 연산군 때의 일이다. 한양 남산에 999칸의 거대한 기와집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전국 팔도에서 몰려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남산을 뒤져도 999칸 기와집은 발견할 수 없었다.

어느 날 한 선비가 이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왔다. 그는 가만히 오두막을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 허백당(虛白堂)이라는 당호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이웃 사람에게 집주인을 물어보니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육판서를 두루 지낸 명재상 홍귀달이었다. 그는 오두막을 찾아가 홍귀달에게 찾아온 까닭을 설명하며 물었다. “그런데 기와집은 없고 대감의 허백당이 있으니 이게 무슨 조화입니까?”

홍귀달이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에게 한 말이 잘못 전해진 모양이네. 허름한 오두막이지만 허백당에 누우면 999칸의 사색을 하고도 여분이 남는다는 말을 자주 했거든.” 선비는 재상까지 지낸 이가 이토록 청빈한 마음을 지닐 수 있음에 크게 감탄했다.

청렴에는 세 가지 등급이 있다고 한다. 최상의 등급은 나라에서 주는 봉급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에는 한 필의 말을 타고 아무 것도 지닌 것 없이 떠나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옛날의 ‘염리(廉吏)’이다.

그 다음은 봉급 외에 명분이 바른 것은 먹고 바르지 않는 것은 먹지 않으며, 먹고 남은 것을 집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중고시대의 ‘염리’이다.

그리고 최하의 등급으로는 관직을 팔아먹지 않고, 재감을 훔쳐 먹거나 곡식을 농간하지도 않고, 송사와 옥사를 팔아먹지 않으며, 세를 더 부과하여 남는 것을 중간에서 착복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오늘날의 ‘염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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