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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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회 제주대 교수 독일학과/ 논설위원

지금 대한민국의 언론, 특히 종합편성채널은 신바람이 났습니다. 국민과 국회로부터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 약속을 어기고 특검과 헌재를 무력화하려 들고 있기 때문이죠. 종편의 눈부신 활약이 없었더라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열렸을까요?

이제 보니 이명박 정부가 잘한 일도 있네요. ‘신문사의 종합편성채널 진입’을 허용한 방송법 개정 말입니다. 네이버에서 ‘종편’을 검색해보니 이명박 정부 때 지금은 새누리당으로 개명한 한나라당이 이렇게 훌륭한 업적을 쌓았더군요. 철통 같던 그 문이 열린 것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인천시청 시장실에 아주 특별한 변기를 하사했다는 사실과 해외순방 때 보여준 독특한 행태 등이 오리발 내밀 기회도 포착하지 못한 부모를 원망하면서도 세금 꼬박꼬박 내면서 온갖 법을 모두 지키며 살아야 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도, 다 그 종편 덕택이라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이 종편의 희생자는 ‘최순실 사람’과 친박 새누리당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그러나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날개 없는 자들의 추락을 막아 주는 고마운 받침대 역할을 한 게 바로 종편이라고 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이 날개 없는 추락자들에게 감사하는 참된 마음이 생긴다면 다행이겠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네요. 의상실 사진에 함께 박혔고, 새해에는 시집을 가라고 축복하는 자신의 연하장 수취인이었던 사람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며 그 고마운 받침대를 피하려 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말도 안 되는 말’이 최근에 재미있게 읽었던 한 시인의 말을 훨씬 돋보이게 하네요. 겸손하게도 그 시인은 자신의 시를 ‘하찮은 말’이라고 평하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네요. ‘밤이 없다’라는 시에서 그는 “꿈에 꿈이 없다”, “그림자에 그림자가 없다”, “그리움에 그리움이 없다”, “잠에 잠이 없다”고 탄식하는데, 이게 어찌 ‘하찮은 말’인가요. 대통령이 대통령이 아니고 왕실장이 왕실장이 아니며 최순실이 최순실이 아닌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담아내는 말이 또 있을까요?

1950년 1·4후퇴 때 눈 내리는 바닷가 ‘하얀 길’을 걸어 함께 피난했던 어머니와 그해 11월 영원한 이별을 해야 했던 아픔을 간직한 시인의 말처럼 2016년에도 세상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철갑문도 열렸으니 2017년에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포기하는 ‘대통령다운 대통령’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종편이 생길 때만 해도 큰 기대를 하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말 할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진다는 사실의 진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삶’을 꿈꾼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삼아 문학을 연구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인 제가 말입니다. 정치인다운 정치인, 부자다운 부자, 사람다운 사람, 교수다운 교수, 학자다운 학자, 의사다운 의사 등이 판을 치는 세상,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그런 세상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의 노예였던 것인데, 저는 몰랐던 것입니다.

위의 시인은 말합니다. “모든 말은 ‘진리를 모른다는 것에 대한 절망의 표현’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보이지 않는 진리’를 포기할 수 없어서 ‘말을 떠날 수 없다’”고. “그래서 시를 쓴다”고. 맞습니다. 맞고요.

‘좋은 삶’을 꿈꾸는 우리 모두에게 지금 꼭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진리’라도 포기하지 않는 희망입니다. 이 희망의 싹이 자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2017년에 선출될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희망의 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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