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인가 가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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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전 중등교장/시인

자연은 진솔하다.

한 순간도 꾸밈없이 내면을 드러낸다. 만물을 품어 주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기도 하고, 폭군이 되어 광풍의 칼을 휘두르기도 한다. 자연은 정직성 하나만으로도 위대하다.

인간들의 세상살이 속에는 가짜들이 많다. 진품으로 오판하고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인가.

오래전 일이다. 재직하던 학교로 떠돌이 장사꾼이 바둑판을 팔러왔었다. 알아주는 오동나무 바둑판이란다. 반지르르한 안면에 묵직한 몸통이다. 바둑을 좋아하는 나는 겉모습에 매혹되어 그예 구입하고 말았다. 2년쯤 지나노라니 겉껍질이 벗겨지면서 정체를 드러냈다.

시멘트 덩어리 위에 여러 겹의 나무껍질을 덧붙여 만든 가짜 중의 가짜였다. 그 떠돌이 돌아서서 콧노래를 불렀으리라.

10여 년 전 수석에 빠진 적이 있었다. 주말이면 혼자서 들이나 바닷가로 탐석을 다녔지만 행운을 만날 수 없었다. 인터넷을 뒤지며 매끈한 몸매에 여러 문양이 들어간 수석들을 한 점 한 점 구입했다.

한번은 너무 멋진 매물을 보고 풍덩 마음이 빠지고 말았다. 큰 산자락 위로 여러 봉우리가 도처에 자리한 산수경석이었다. 택배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포장지를 뜯으니 사진에서 보았던 그대로였다. 내심 자랑하고 싶어서 드나들던 수석가게로 가지고 갔다.

전문 수석상은 대뜸 자연석이 아니라 조석이라고 말하며 얼마에 구입했느냐고 물었다. 수십만 원 주었다니까 그 정도는 나갈 것이라며 자연석이라면 단위가 많이 틀려질 것이라 설명했다. 나의 안타까운 마음을 읽은 그는 눈으로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니 그냥 감상하시라며 위로했다. 베란다의 사물함 위에 자리한 그 조석은 볼 때마다 산과 골이 언어가 되어 내게 많은 의미를 전해 준다. 가짜도 마력을 지니는가.

일전에 검찰은 25년 간 위작 논란을 일으킨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진품으로 결론 내렸다. 여러 과학적인 기법을 동원해 진위를 가린 결과 천 화백 특유의 작품 제작 방법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앞서 프랑스의 뤼미에르테크놀로지는 나름의 기법으로 진품일 가능성이 0.0002%라고 발표한 바 있다. 천 화백 스스로도 생전에 자신이 그린 게 아니라고 했으니 평범한 나로서는 어느 쪽 판단을 믿어야 할지 헷갈리게 된다. 하늘만이 진정한 진위를 알까.

마당 한편에 심어놓은 국화가 6월의 끝자락에서 몇 송이 꽃을 피웠었다. 가을꽃으로 인식해 온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건 여름에 피는 코스모스같이 육종기술에 의한 신품종 개발일 테다.

사유의 계단을 오르며 현상과 본질을 헤아려 보았다. 현상은 계절을 거슬렀지만 본질은 생명에 있었다. 본디 어떤 생명에도 가짜는 없다. 모든 생명 앞에 숙연해지는 까닭이다.

인간은 거짓일 수 없다. 어디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는가. 귀하고 귀하다. 신은 의지의 자유를 주시며 생명과 죽음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셨다. 그래서 몸은 진품이지만 마음은 위선인 자들이 많아지는 것일까.

악을 품고 선을 내세우거나 불의를 감추고 정의를 외친다면 참이 아니다.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말하는 것은 진품이다. 고통을 감내하며 잘못을 회개하는 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그에 더할 진품일 게다.

양심으로 덧씌운 내 마음의 그릇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진짜인가 가짜인가. 조용히 눈을 감는다. 겨울 앞에서 따스한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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