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이도 나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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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탄핵 정국에 여사한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동상에다 칠을 분무한다든지 오래된 그분의 흔적을 억지로 지우려는 일. 탄핵 심판을 앞둔 민중의 분노가 대통령 아버지에게 불똥으로 튀는 모양새다.

제주에서도 한라산 5·16도로 기념 표석(標石)을 심히 어질러 놓는 일이 일어났다.

5·16도로기념비 정면 ‘朴正熙大統領閣下’라 음각한 글씨 위에 물감으로 ‘독재자’라, 옆면에는 ‘유신망령’이라 새빨갛게 낙서해 비석 전체가 볼썽사납게 훼손됐다.

5·16도로는 1967년 제주에서 서귀포를 횡단해 개통한 길로 도민의 숙원사업이었다.

제주 길사(史)의 획기적인 자취이면서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남북으로 가로질러 거리를 단축한 섬의 대동맥의 하나다.

엄중히 말해, 이 도로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는 별개다. 대통령과 부녀간이라는 이유로 길까지 혐오할 것은 아니잖은가.

헌정을 어지럽힌 현 대통령을 심판하면 되는 일이다. 그만큼 우리는 성숙했다.

기념비에 독재자다 유신망령이다 낙서한 것도 떳떳하지 못하다. 표현의 자유라 주장할지 모르나, 그게 어디 그 범주에 들어갈 일인가.

한때 도로 명 변경 논란을 거쳤던 일이고, 또 5·16도 혁명이 아닌 쿠데타라 규정하고 있다. 그분에 대한 공과(功過)는 역사가 기술할 일로 사가(史家)의 몫이다.

일단락 지은 일을 이번 사태와 연관해 들추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나무줄기에 박힌 옹이를 파내려다 일을 낼 수 있다. 그냥 두는 게 현명하다. 옹이도 나무의 역사다.

요즘 시국 돌아가는 게 분별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종편을 보노라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 이상 구겨질 수 없다는 데 이르러 부아가 치밀곤 한다.

사태의 핵심은 최순실 등에 의한 국정농단으로 헌법질서를 짓밟고, 재벌로부터 수백억의 불법 자금을 끌어내 무슨 재단들을 만드는 데 대통령이 공모했다는 것 아닌가. 큰 줄기에 잔가지가 돋아나는 법이니 이런저런 일들이 불거져 나올 것은 불문가지다.

그런다고 대통령의 생활 이면까지 속속들이 까발리는 것은 도를 넘는 것 아닌지. 세월호 그 참혹한 비극의 날,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할 막중한 자리에서 비워 버린 대통령의 ‘일곱 시간’이라는 공백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 내면은 어떻게든 밝혀져야 할 중대한 문제다.

하지만 머리모양, 한복, 주사, 식사, 화장…. 대통령의 다반사 일거수일투족을 들춰내야 하는 건지. 대통령도 사람이고 여성인데, 사람으로서 또 여성으로서 존중돼야 할 영역까지 다 들어내야 성에 차는 일인가.

다소간 여유를 가지고 가슴 쓸어내리며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해야 한다. 이러다 대통령이 입은 옷까지 벗기려 들지 몰라 하는 소리다. 말하면서 쑥스럽지도 않은가. 어떻게든 나라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그분은 다 내려놓고 피의자로 헌재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응분의 사법적 조치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못하는 식물대통령을 놓고 할 말, 못할 말 마구 쏟아놓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이다. TV를 켜면 만날 그 나물에 그 밥, 동어반복이라 피곤감만 쌓인다. 우리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여간 따갑지 않다.

이제 세밑이다. 제발 그만하고 모두들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면 어떨는지. 어쨌든 나라는 제대로 돌아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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