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도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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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외국에 살아도 한국인은 한국인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제일 먼저 눈과 귀가 돌아간다. 생활필수품이 된 스마트폰 덕분에 세계 어느 구석에 있어도 한국과 접속하는 건 일도 아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역설적으로 지구촌의 한국인들을 다시 한 번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다. 한국인 모두가 한 마음이 돼 더러는 촛불을 켜들기도 했고 더러는 혼자 나라를 걱정하기도 했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2002년 월드컵 축구와 그 의미가 뒤바뀐 것뿐이다.

결국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돼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고 국회 국정조사와 특검이 진행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이 과정에서 권력 주변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사실들이 새롭게 드러나 국민들을 허탈감 속에 몰아넣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드러난 사실이나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선뜻 그렇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는 말로 제기된 의혹을 부인하기 바쁘다.

하기는 대통령 자신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속 시원하게 털어놓은 게 없다. 오히려 헌재에 제출한 탄핵 소추안에 대한 답변서에서 대부분의 의혹을 부인하거나 반박했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그걸 낸 사람이나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자기 목소리 내기에만 바쁘다. 해법을 찾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만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선전전 양상이다. 특히 제도적 관점에서 보면 위상 자체가 불분명하기 짝이 없는 일부 대선주자들은 벌써 대선이 시작된 듯 밀고 당기는 기싸움이 치열하다.

걸핏하면 국가와 국민만 생각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맞을까 싶다. 자기 앞길만 닦겠다는 심보가 훤히 보인다. 같은 배를 탔던 여당 정치인들까지 반성의 기미도 없이 서로 손가락질하며 싸우는 모습은 보기 민망할 정도다.

지도자도 한 인간일 뿐이다. 그러나 적어도 공직사회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어느 정도의 도덕성은 갖춰야 한다. 국민의 눈높이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주변이 깨끗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굳건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과거 정권에서 고위 공직자들의 위장 전입이나 부동산 투기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더니 어느 덧 책임 회피와 거짓말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게 된 모양이다. 국민을 우습게 알지 않으면 쉽게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이런 일이 제발 일부 지도자들에게 국한되기를 바랄 뿐이다.

최근 뉴질랜드에선 존 키 총리가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했다.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8년 동안 장기 집권해온 50대 중반의 정치인이 홀연히 정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자신의 바쁜 공직생활로 가족들을 더 이상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국가와 국민 만큼 자신과 가족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내릴 수 있는 결단이다.

공직의 지도자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리다. 도덕성이 중요한 이유다. 개인의 욕심이 지나치면 권력욕으로 타락해 비리로 귀결되기 쉬운 게 공직이다. 키 총리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장기 집권할 수 있었던 데는 그 자신은 물론 주변까지 철저히 관리하며 도덕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권당 소속의원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을 했을 때 그는 그것이 아무리 작아도 당 대표로서 서슴지 않고 쳐내는 용기를 보였다. 거짓말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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