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같은, 드라마보다 더 분노케 하는
드라마 같은, 드라마보다 더 분노케 하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강용준 한국문인협회 이사 작가/논설위원

한국은 드라마의 강국이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 문화콘텐츠 중 하나가 드라마다. 잘 꾸며진 드라마는 한번 빠지면 끝까지 보고 싶은 중독 같은 마력을 지닌다. 허나 드라마는 환상의 세계다. 대통령이 드라마 마니아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번역기가 있어야 해석 가능한 드라마 대사 같은, 때로는 유체이탈 화법을 쓰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헌데 요즘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는 뉴스가 온 국민을 집단 최면에 몰아넣고 있다. 양파껍질 벗기듯 끝을 알 수 없는 국정 농단 사건의 흥미로운 실체가 연일 드러나면서 본업에 몰입해야 할 국민들의 시선을 빼앗고 있다.

언제 나라가 평안했던 적이 있었던가만은 금년은 유독 정치가 국민을 괴롭힌 한해다. 봄에는 20대 국회의원 선거 문제로 한동안 시끄럽더니 10월 말에 터진 국정농단 사건은 급기야 분노한 시민들을 광장으로 모이게 만들었다. 불의한 드라마 주인공처럼 연이은 대통령의 거짓말 담화 때문에 주말마다 시민들은 생업도 내팽개친 채 광장으로 나가 울분을 삭여야했다.

정치란 고통 받는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 했는데, 백성이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게 나라냐는 말도 나왔다. 통화 내역, 대통령이 좋아하는 수첩 등 숨길 수 없는 권력을 사유화한 증거들이 나오는데도 일부 보수 쪽 사람들은 대통령이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항변한다. 언론에 보도되는 정보들과 청문회 증인들의 증언을 들으며 깜냥도 안 되는 자들이 국정을 분탕질하도록 눈감은 대통령 주변사람들에게도 분통을 터뜨렸다.

보다 못한 젊은 엄마는 유모차를 끌고, 학생들은 수능 공부도 뒤로하고, 어린 자녀들과 함께 온 가족이 광장으로 나섰는가 하면 백세 노인까지 지역과 이념을 떠나서 나라를 걱정했다. 광장은 학생들에게는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이 되었고, 뚜렷한 업적이 없는 대통령에게 국민을 하나로 통합시킨 업적을 남기게 됐다는 조롱도 했다.

역사적인 전쟁도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듯이 이번 사건도 강아지 때문 생겼다. 영국 BBC는 한국의 국정논단 사건을 강아지게이트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강아지가 아니었으면, 그것으로 모욕을 느낀 한 사내의 분통이 아니었으면 그래서 테블릿 PC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국정농단 사건도 한낱 ‘지라시’에 나오는 유언비어라는 이름으로 덮일 뻔했다. 그랬다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드라마는 당사자들의 득의의 웃음과 함께 묻혔을 것이다. 드라마의 속성을 잘 아는 사람들은 흘러가는 스토리를 보면 결말을 쉽게 유추해내곤 한다. 그 정도면 국민들은 다 아는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을 대통령만 모르고 있다. 결말이 뻔히 보이는데 상대방 탓을 하면서 꼬여버린 드라마의 종방을 거부하고 있다. 공은 헌재로 넘어갔다. 헌재가 국민여론을 어기고 새로운 반전을 꾀할까? 아니면 다수의 국민이 소망하는 대로 정의의 심판을 내릴까?

헌데 이 과정에 문화예술계에 불똥이 튀었다. 문화융성이란 국정과제가 국정을 농단한 차은택의 아이디어였고 그로인해 지원되던 많은 문화예술 예산들이 전액 삭감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새해 예술활동이 위축될 것이 명약관화한 현실이 되었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되어 지원되던 예산마저 삭감되어 그나마 지역주민들의 문화·예술 향수권의 기회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다잡아 보지만 드라마가 끝나기 전에 마음을 곧추세우기는 진즉 틀렸다.

저작권법 때문에 크리스마스 캐롤송도 듣기 어려운 병신년 세모(歲暮)의 거리에서 분노하는 시민들이 하루라도 빨리 평상심을 되찾을 있는 드라마의 결말을 기대한다.새해에는 어떤 드라마가 펼쳐질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