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유물의 향기로운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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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한집 진성기 선생에게서 두 권의 책을 받았다. ‘한라산 옛말’과 ‘아름다운 유물의 향기로운 노래’.


제주 옛 사람들의 밭은 숨결이 느껴지는 역저다.


‘탐라의 숨결 배인 하나하나 유물이라/ 조상이 살아오신 자취가 역력하고/ 살면서 생각해 모신 슬기도 엿보인다// 유물은 어느 것도 버린 것이 하나 없어/ 어렵게 모은 보배 한평생 지키다가/ 어느 날 눈 감는 날 고이 두고 가리라.’ (진성기, ‘제주민속박물관’ 부분)


선생은 민속학자이고 시조시인이다.


이전에, 제주를 사랑하면서 그 제주사랑을 제주학의 이론 천착으로 몸소 실천하고 또 시로 노래한 분이다.


여직 제주에는 선생처럼 진정 제주를 가슴으로 품어 온 분이 없었다.


제주민속박물관을 설립했던 게 1964년의 일. 발품 팔며 섬 전역의 마을과 골목들을 돌아 모은 450점 전래의 민속 유물로 시작한 이 섬 초유의 민속박물관은 출발부터 획기적이었다.


우리는 낯설고 설렜던 ‘민속박물관’의 탄생을 기억한다.


박물관 개관 이후, 행정과의 대립 마찰에 부대끼며 삼양동으로 이전하기까지 갖은 우여곡절을 겪었음은 세인이 다 아는 일이다.


2014년 그가 창설 운영해 오던 제주민속박물관을 모교인 제주대학교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50년, 반세기만의 일이었으니, 한집 선생의 벅차고 얼크러진 심서(心緖)를 말로 다하지 못했으리라.
이태 뒤인 2016년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한집민속관’으로 상설 개관해, 깊고 그윽한 큰집에 영원히 둥지를 틀었다.


선생은 향토사학자요 제주학의 정치(精緻)한 이론가, 무속의 연출가다. 그리고 선생의 탐라 역사와 민속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이론을 정립해 대학 강단에 나아가 강설하는가 하면, 타고난 신명에 제주무신궁 큰굿을 치르기도 했다.


“오늘의 지식인들은 이솝이야기를 비롯한 서양의 이야기들을 몇몇 외우고 그것을 자랑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우리가 자라 온 풍토 위에서 이루어진 우리의 이야기들을 모르고 있음은 수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진성기 저 ‘南國의 民譚’)


선생의 제주 사랑은 단순한 애착이 아니다.


제주와 제주 문화의 본원에 대한 정시(正視)의 시선이 일궈 낸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결실을 넘어 개가(凱歌)다.


제주도 신화, 전설, 민요, 무속 그리고 옛말사전에 이르는 선생이 펴 낸 제주도학총서 전 30권은 학문적 노작의 눈부신 성과물로 평가 받고 남는다.


한 장 한 장 넘기노라면 행간 처처에서 제주의 바람소리, 물소리 난다. 땀에 전 섬사람들의 노랫가락, 농부의 애타는 한숨소리가 새어나와 먼 산 바라본다.


성큼 다가와 자애로운 눈빛으로 어루만지는 이 섬의 어머니 한라산. 제주의 노래, 향기로운 노래.


작년 선생에게 졸저를 보냈더니 원고지에 꾹꾹 눌러 쓴 편지가 왔다.


“진솔하고 정감이 넘칩니다. 정독하고 공부하겠으며 제 책상에 두어 만나는 이마다 자랑삼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삼양동에서 남고초등학교 곁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혹 지나는 길에 들러주시면 합니다.

‘한밝’이라는 주택 201호입니다.’ 선생의 겸손에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올해 81세, 백세시대이니 오래 수(壽)를 누리시라 축원하고 싶다. 선생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다. 무엇보다 더 듣고 싶은 ‘아름다운 유물의 향기로운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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