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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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선/수필가

밤이 이슥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새벽이 올 기척은 아직 보이지 않고, 책을 읽기에는 머릿속이 맑지 못했다. 남편은 술자리가 길어지는지 아직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이 온통 거미줄을 친 듯하다. 이럴 땐 서랍이라도 정리하는 것이 좋으리라. 유효기간이 훨씬 지나버린 약품들, 줄이 끊어진 묵주, 아이들이 보낸 생일 축하카드들, 그리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사진들을 하나씩 분류하기 시작했다. 골무를 발견한 것은 두 번째 서랍을 열었을 때였다. 시어머님의 유품이다. 여러 겹의 천위에다 비단조각천을 덧대고, 색실로 곱게 선을 낸 작은 골무는 내가 지닌 시어머님의 하나밖에 없는 유품이다.

 

같은 동네에서 자란 터라 친정 부모님은 남편과의 결혼을 탐탁해하지 않으셨다. 어쩌면 가난하고 형제가 많은 집으로 시집 보내고 싶지 않으셨을 지도 모르겠다. 어머님은 친정엄마를 찾아와서 ‘나는 당신 딸을 하루만 못 봐도 보고 싶다. 그런데 우리 아들이 뭐가 모자라서 마다하느냐’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단다. 엄마의 생각이 달라진 것은 그 말씀 덕분이었을까. 아마 우리를 맺어준 일등공신은 어머님이셨을 것이다.

 

수를 잘 놓던 고운 처녀가 가난한 남편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늘 고단한 일상이 거듭되었으리라. 농사를 지을 땅도 제대로 없이 여섯 남매를 키우는 것은 힘이 드셨을 것이다. 형들은 일찍 객지로 나갔고 남편의 아래로는 세 명이나 되는 여동생이 있었다. 점심때가 되면 엄마가 일하고 있는 곳에 여동생들을 슬그머니 밀어 넣고는 혼자 집으로 돌아온 허기진 소년은 하루 종일 밭을 매고 돌아오는 엄마를 위해 골목길을 쓸었단다. 엄마가 비질이 잘된 깔끔한 길로 걸어오는 모습을 보려고……. 철없는 동생들이 발자국이라도 내면 다시 쓸고, 또 쓸었다고 한다. 엄마는 그 길을 걸어 들어오면서 ‘잘했네.’하면서 칭찬하셨을 것이다.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서, 엄마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보기 위해서 어린 소년이 할 수 있었던 최고의 행동이 아니었을까?

 

어머님은 아주 가끔 거제도의 신혼집에 오셨는데, 그때마다 “얘야, 바느질거리는 다 내어 놓거라.” 하며 이불호청까지 깨끗하게 세탁해서 바느질을 해 주셨다. 나는 단추가 떨어져나간 셔츠까지 내어놓으며 어머님 옆에 가만히 앉았다. 바느질에 몰두할 때 어머님은 편안해 보였다. 어머님의 속눈썹이 유난히 길고 고운 것도 그때 알았다.


찬도 제대로 없는 밥상을 받으면서도 밭일을 하지 않으니까 밥맛이 참 좋다고 하셨다.


입덧이 심할 땐 시장으로 가보라고 한분도 어머님이셨다. 이것저것 구경하다보면 적당한 운동도 될 것이고 먹고 싶은 음식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셨으리라.


어머님은 당신이 가진 가난한 주머니를 다 털어 냉장고를 가득 채워놓고서야 가셨다.


딸아이의 백일을 축하하러 오신 어머님은 ‘예쁘다. 고것 참 예쁘다. 안경을 가져와서 더 자세히 볼걸.’하면서 못내 아쉬워하셨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님은 투병중이셨다. 손자를 보고 싶은 마음에 아픈 몸을 겨우 추슬러 사돈집까지 힘든 발걸음을 하셨다. 아기를 안겨 드렸더니 가만히 쳐다보다가 손으로 얼굴을 쓸어보고, 또 다시 쳐다보기를 반복하셨다. 그러나 안고 일어서지는 못하고 한동안 그렇게 앉아 계셨다.


어머님은 쉰아홉의 안타까운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남편은 몇해동안이나 어머님의 기일에 통곡을 했다.

 

택시가 멎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이 오는가 보다. 손바닥에 올려놓은 작은 골무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앉은뱅이 책상위에 내려놓았다. 골무의 둥근 선이 어머님의 눈매를 닮았다.


오늘은 내 꿈으로 들어오는 길을 쓸어 놓아야겠다. 어머님이 가장 먼저 밟고 오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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