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이 오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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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러시아에 바흠이라는 농부가 있었다. 많은 땅을 갖는 게 소원이었던 그는 어느 날 땅을 사러 다른 마을로 갔다. 마을 촌장으로 변신한 악마가 바흠에게 하루 종일 발로 걸어서 돌아본 땅을 1000루블에 주겠다고 제의했다. 단, 해 지기 전까지 출발점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땅도 가질 수 없고 돈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바흠은 해가 뜨자마자 광활한 초원을 걷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괭이로 땅을 파서 표시하며 걷고 또 뛰었다. 그렇게 해서 엄청난 땅을 차지하는 듯 했으나 해가 꼴깍 떨어지는 순간 출발점을 바로 코앞에 둔 지점에서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사람들이 구덩이를 파서 그를 묻었다. 그가 차지한 땅은 결국 죽어서 들어간 자기 키 만큼의 구덩이가 전부였다.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쓴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단편의 내용이다.

사람들은 바흠을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욕심 때문에 죽었다고 손가락질한다. 그러나 누구라도 그런 유혹을 받는다면 또 한 사람의 바흠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설령 운이 좋아 죽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죽을 만큼 달리고 또 달릴 게 틀림없다.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땅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보는 게 더 옳을 것이다. 무엇을 하며 살아가든 삶의 기본 터전이 땅이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데도 땅이 필요하고 집과 공장, 건물을 짓는 데도 땅이 필요하다. 심지어 죽어서도 묻힐 한 뼘의 땅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을 놓고 싸우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인류 역사상 많은 갈등과 분쟁이 땅 때문에 일어났다. 전쟁을 했고 지주와 소작농이 싸웠다. 전쟁에 이겨 남의 땅을 더 많이 차지한 사람은 영웅으로 추앙을 받았고 많은 땅을 가진 지주는 왕처럼 떵떵거렸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만주벌판을 차지했던 시대가 있었고 그걸 잃어버린 후세는 가슴을 쳤다.

땅을 차지하려는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총과 칼을 든 싸움이 돈의 전쟁으로 바뀐 것뿐이다. 전쟁을 수행하는 집단이 국가 단위에서 기업이나 개인 단위로 소수 정예화된 것뿐이다. 국경도 없는 전쟁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땅을 생산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만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투자나 투기가 판친다. 땅을 사서 가만히 놔두어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침을 흘린다. 불로소득에 열광한다. 그런 현상은 토지의 비생산적인 이용과 빈부격차라는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땅은 공적 재화다. 공급량이 한정돼 있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는 게 땅이다. 필요에 따라 자동차처럼 밤새 공장을 돌리며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래서 국가의 관리가 필요하다. 사유재산권을 적절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토지 공개념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기본적으로 땅은 나라의 기본 토대인 국토이고 개인은 그것의 표면 이용권만 갖고 있다고 본다면 그런 주장은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짠물과 돌 때문에 농사짓기도 힘들던 제주의 땅도 외지인들의 손에 많이 넘어간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외지인들이 소유한 땅 중에 생산적으로 이용되지 않는 게 적지 않은 모양이다. 투자나 투기가 의심되는 땅들이다. 그런 땅은 기껏해야 거래과정에서 땅값을 올리는 역할을 할 뿐이다. 물론 땅값이 오르면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던 사람들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투기가 억제되지 않으면 자본의 공세 앞에 그들도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자자손손 살아온 토박이도 땅이 없으면 고향을 떠나야 하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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