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巴里長書記念(파리장서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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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詩 勉軒 金廷彦(작시 면헌 김정언)

願吾獨立檄書成  원오독립격서성    나라의 독립을 청원하려 격문을 지어/
日帝凌侵字字明  일제릉침자자명    일제의 침략을 글자마다 밝히었네/
民族安歸無寄命  민족안귀무기명    민족이 편안히 돌아가 목숨 붙일 곳이 없어/
儒林團合有聯名  유림단합유연명    유림이 단합하여 연명하니/
報知萬國圖光復  보지만국도광복    모든 나라에 알려 광복을 도모하려고/
憂積十年忘死生  우적십년망사생    십년간 근심이 쌓여 죽고살길 잊었나니/
三千疆土蕭條裡  삼천강토소조리    삼천리 강토가 쓸쓸한 속에서도/
陳說同胞痛憤情  진설동포통분정    동포들의 통분한 심정 모두 설파하였네/

 

▲주요 어휘

△巴里長書=1919년 김창숙(金昌淑) 등이 주동이 되어 파리평화회의에 독립탄원서를 보내려다 발각된 사건. 유림대표 곽종석(郭鐘錫), 김복한(金福漢) 외 137명이 작성하여 보내려다 발각되어 곽종석, 하용제(河龍濟), 김복한 등은 옥중 순사하였다. 

△疆=지경 강  △蕭條=쓸쓸한 모양  △陳設=설명

 

▲해설

오문복(吳文福) 선생이 편저한 영주풍아(瀛洲風雅)를 읽다보니 나의 백부님의 1919년에 지은 한시 파리장서기념(巴里長書記念)을 발견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유림은 그 중심에 서지 못했는데, 영남의 유림 곽종석 등이 김창숙(金昌淑)과 협의하여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평화 회담에 보낼 독립청원서를 파리장서(巴里長書)라 한다. 당시 제주향교에 보내온 파리장서(巴里長書)를 제주시 영평동 시암 김영권(蒔菴 金永權 1887∼1951)이 필사(筆寫)한 것이 오늘날까지 나주김씨(羅州金氏) 집안에 보존중이다. 

김정언(金廷彦 1892~1983), 호는 면헌(勉軒), 문인, 개량서당 교사, 제주도 한시 고시관, 영주음사 회원, 1962년 제주시로 이주하여 영주음사 활동과 한시(漢詩) 작성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는 김균배(金勻培 조천읍 북촌)와 함께 한라문화제 한시 백일장(白日場)의 고평(考評)을 담당하였다. 무과급제한 김기현(金沂鉉 곽지리)의 손자이며 김재천(金在天)의 장남으로 태어나, 영남학파의 허방산(許舫山) 문하생 교원인 일헌 장성흠(一軒 張聖欽)의 문하생이다. 애월면 초기 회계원으로 재임하다가 교학에 뜻을 두어 한림읍 대림리와 향리에서 오래 개량사숙의 교사로 근무했다.

1945년 해방이 되어 초대 곽지리 이장으로 뽑혔다. 선친이 학교 부지를 쾌척(快擲)하니 초등학교 건물이 준공되자, 그는 영주음사(瀛洲吟社) 사장 최원순(崔元淳)에게 의뢰하여 ‘전도 백일장’을 개최하는데 일익(一翼)을 담당하였다. <해설 남헌 김찬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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