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글리시 더치페이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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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제주대학교 교수 영어교육과/논설위원

지난 9월 28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은 공직자 등을 포함한 우리 사회 전반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식당에서의 저녁 약속이 줄어드는가 하면 식사가 불가피한 경우라도 비용을 서로 나누어 지불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더치페이(Dutch pay)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신문과 방송 및 인터넷에서는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 자신의 몫은 자신이 부담하는 더치페이 문화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는 기사들로 넘쳐나고 있다. 은행권에서도 더치페이 기능이 있는 앱과 더치페이 기능이 추가된 스마트 뱅킹 앱을 속속 도입하여 금융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요즘 언론을 비롯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더치페이란 용어는 영어가 아닌 콩글리시(Konglish)이다. 영어를 배운 사람이라면 ‘Dutch treat’ 또는 ‘going Dutch’가 올바른 표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저녁을 각자 부담하자고 말할 때에는 ‘Let’s go Dutch for dinner.’라고 되는 것이다.

관련 자료에 의하면 ‘Dutch treat’ 또는 ‘going Dutch’라는 용어는 1652-1674년 경 영국과 네덜란드가 3차례 해상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덜란드가 동방 해상무역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동인도회사를 세워 영국과 식민지 경쟁에 나서면서 두 나라는 급기야 무역전쟁을 치르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인들은 네덜란드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Dutch treat’는 영국인들에 의해 네덜란드인들이 인색하거나(stingy) 혹은 쩨쩨하다(cheap)라는 인상이 반영된 것으로, 대접은 받았으나 실은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비용을 내는 결코 대접 아닌 대접이란 뜻이 되었다. 두 나라의 전쟁 시기에 생긴 ‘Dutch’가 포함된 부정적 의미를 갖는 다른 단어들로는 ‘Dutch auction’(값을 점점 깎아내리는 경매), ‘Dutch concert’(각자 다른 노래를 불러 소음을 일으키는 합창), ‘Dutch courage’(술김에 내는 용기), ‘Dutch uncle’(잔소리꾼) 등을 들 수 있다.

더치페이를 우리말로는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이에 대해 국립국어연구원은 2010년에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 누리집을 통해 더치페이를 대신할 우리말을 공모하였다. 누리꾼이 제안한 ‘나눠내기’, ‘각자내기’, ‘각자부담’, ‘추렴’, ‘노느매기’를 후보로 하여 1776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940명이 ‘각자내기’에 동의하였다고 한다. 더치페이 대신 우리말로 ‘각자내기’가 적합하다고 본 것인데 식사를 한 뒤에 각자가 비용을 함께 나누어 지불한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는 선택이라 생각한다.

영국인들이 받아들이는 ‘Dutch treat’란 단어에는 네덜란드인들을 경멸하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네덜란드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절약을 더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서양에서는 연인 사이 데이트를 할 때 이미 각자내기 문화가 정착되었고, 일본에서도 비용을 각자가 부담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는 식사를 한 후 계산대 앞에서 비용을 혼자 내겠다고 싸우는 대신에 각자내기 위해 줄을 길게 서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난 이 때 법에 대한 과잉 해석으로 민간 영역의 고유한 활동까지 멈추게 해서는 곤란하다. 아직까지도 개념이 모호한 직무 관련성의 범위를 하루빨리 명확히 정하여 건전한 소비와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는 일이 없이 각자내기 문화가 우리 사회에 일상화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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