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듬지는 살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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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전 중등교장/시인

취미로 분재를 시작한 지도 20년이 더 되었다. 화분에 나무를 심어 키우면 분재려니 생각하며 하나 둘 늘리다 보니 이제 그 수도 200여 점이 된다. 소나무, 향나무, 주목, 소사나무, 단풍나무, 모과나무, 심산해당, 매화, 애기사과, 애기감, 노박덩굴 등 종류도 50종에 가깝다. 주로 오일장에서 값싼 나무를 구입했고 더러는 육지 분재원에서 구입하기도 하고 시골 밭에서 캐 온 것들도 있다.

이렇게 수가 많아진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나무마다 고유한 특성과 아름다움이 있어 그에 끌린 바 크지만, 나의 손에 들어오는 나무들을 분재로서의 가치를 생각하기에 앞서 하나의 생명체로 여겨 왔기 때문이다. 자연 어디에선가 터를 잡았더라면 잘 자랐을 나무가 나와 인연을 맺음으로써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렇다 보니 새끼손가락 굵기가 안 되는 것들도 여러 개 있다. 그러니 수는 많지만 전시회에 자리할 만한 것은 별로 없다. 나무 만물상을 운영하는 것으로 많은 것을 배우며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제때에 분갈이를 하고 물주기를 하면서 열심히 보살피노라 하는데도 죽어 간 나무도 더러 있다. 올봄에도 분갈이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잎이 누렇게 변하더니 끝내는 명줄을 놓고 말았다. 부엽토와 마사토를 섞은 흙을 꼭꼭 눌러주지 못해 뿌리 밑에 공간이 생긴 탓이었다. 분갈이를 많이 하느라 세심하게 처리하지 못했으니 분명 나의 과실이다. 그냥 버리기엔 아쉬워서 곁에 담쟁이를 심어 생명을 덧씌워 놓았다.

내가 무척 아끼는 애기사과 분재가 있다. 몇 해 전 청주에서 비행기 타고 건너온 녀석으로 굵기나 모양새가 참 좋아 열매를 많이 달리게 하면 전시회에 출품해도 손색이 없을 나무이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부터 우듬지의 잎들이 말라 떨어지며 이상 징후를 드러냈다. 올봄에 분갈이를 위해 화분에서 나무를 들어냈더니, 이럴 수가. 뿌리가 썩어들면서 개미들의 아지트가 되어 있지 않은가. 줄기의 절반 이상이 핏기 잃은 채 희뿌옇게 변했고 푸석거리는 곳도 있었다. 나는 즉시 생기가 있는 곳까지 파내고 나서 고체 상처치료제를 붙이고 마당 한쪽에 심었다. 봄을 보내며 새로운 우듬지가 생기고 뿌리 쪽에서도 몇 개의 줄기가 뻗어 올라왔다. 몸체가 길이로 3분의 2가 사라졌는 데도 생명력을 복원하다니 그 신비에 경탄할 뿐이다.

사회의 우듬지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은 과연 살아있는가. 희망의 푸른 잎새들을 풍성히 키워내고 있는가. 윤리와 도덕의 뿌리 썩음은 없는가. 책임을 등한시하며 특권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민초들과 의사소통을 하며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있는가. 솔직히 어느 하나 긍정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슬픈 현실이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에 갇혀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살아야할 당위이다.

혼자서는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를 보듬으며 멀리 가야 한다.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일치의 정신이요, 힘의 원천이다. 네가 죽어 내가 사는 삶이 아니라, 네가 살아서 나 또한 사는 삶, 참 아름답지 않은가.

우듬지는 온 가지를 거느리고 햇볕을 넉넉히 받을 수 있도록 제대로 방향을 향해 선도한다. 거목 아래 서면 경외감이 솟는 연유일 터이다. 사회의 리더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마음속에 진정한 우듬지들을 키우자. 튼실한 뿌리는 드러나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게 제 삶을 열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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