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날의 이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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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혜/수필가

이 가을을 멋지게 수놓고 싶던 차, 마침 뮤지컬 ‘맘마미야’가 왔다. 남편과의 동행은 기대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이 시골에서 혼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 독서회 후배들의 옆구리를 찔러보았다.


스웨덴의 팝 그룹‘아바’를 좋아해, 한 때 그들의 테이프를 듣고 또 듣고, 그 중 ‘I have a dream’에 빠져 살았다. 그 무렵에 모 방송국 백일장이 있어 어렵게 응모해 보았다. 꿈도 꾸지 말라고 남편은 미리 찬물을 끼얹었지만 그래도 백일장이 열리는  오설록 박물관까지는 군소리 없이 데려다 주었다. 가는 내내 나는 그 노래를 리플레이 해 가며 들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꿈을 잃고 살아온 지 몇 십 년인가. 이제 비로소 꿈을 꾸려 하는데 그는 동냥은커녕 쪽박만 깨고 있다. 그때 나는 쉰아홉 살로 결핍의 절실함을 채우고자 ‘그리운 것에 대하여’라는 제재로 원고지 십 매를 채웠다. 그 전 날 도서관에서 원고지 쓰는 법을 배워 왔지만 수필쓰기도 처음이었다. 학교 다닐 때 몇 번 써 본 작문 실력에, 성당 주보에 가끔 짧은 글을 실은 게 전부였으니 용감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내 간절한 소망이 어딘가에 통했음이리. 나는 수필로 은상을 받았고 대상과 금상은 시였다. 아, 꿈일까. 그렇게 아바와 함께 시작한 내 수필 쓰기였으니 어찌 뮤지컬  ‘맘마미야’ 공연을 안 보고 배기랴.


같은 마음들이었을까. 꿈꾸는 노년의 여자 다섯이 의기투합했다. 이사 온 이 시골집에서 논산까지는 남편이, 대전 예술의 전당까지는 동료의 차를 타고 갔다. 여섯 시에 예약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오늘의 콘셉트는 화려함과 우아함. 그러나 라운지 레스토랑은 인산인해라 주문한 음식이 언제 나올지 몰랐다. 공연 시간은 일곱 시, 할 수 없이 우리는 근처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서 새우버거를 먹었다.


원래는 미리 와서 인근의 미술관부터 관람하기로 했지만 그것도 틀어졌고 우아한 저녁식사도 물 건너갔다. 대신 예매한 번호로 여유 있게 좌석을 받아 이층에 앉았다.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라 유명 배우가 총 출연한다 해서 이 날 이 시간을 택한 것이다.


얼마만의 화려한 외출인가. 젊어선 세기의 테너 스테파노, 정경화와 협연한 암스텔담 콘체르헤보 오케스트라도 초대받아 남편과 함께 했지만 이 나이에 나를 초대할 사람은 없었다. 큰마음 먹고 내가 나를 초대하기로 하면서 가당치 않은 거금을 털은 거다.


첫 시작부터 ‘I have a dream’이 은은히 연주곡으로 나온다. 무대는 그리스의 작은 섬 안의 미혼모 ‘도나’의 모텔, 결혼을 앞 둔 그녀의 딸 스무 살 ‘소피’가 생부를 찾기 위해 이십 년 된 어머니의 일기장에 있던 세 남자에게 엄마의 이름으로 청첩장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 남자가 다 나타난다. 그러나 어찌 아버지를 분간 할 수 있겠는가. 결혼식 날 딸은 긴 여행을 떠나고 대신 엄마 도나가 세 남자 중 제일 깊이 사랑했던 남자와 결혼식을 한다. 엔딩곡이 ‘I have a dream’으로 소피가 꿈을 믿는다고 노래한다.


웬일인지 공연을 보고 온 후 열이 오르고 설사가 심해갔다. 오한까지 난다. 의사는 냉장고 안의 오래된 음식을 먹었냐고 묻는다. “그런 음식은 개도 주지 않았어요.” 결국 항생제까지 먹게 되었다. 다 복용하고도 시원치 않자, 의사는 심상치 않다며, 사일 분을 더 처방하며, 대장 내시경을 찍게 했다.


그날 공연을 보았던 다섯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하소연을 털어놓게 되었다. 공연을 본 그날 밤 한 친구는 응급실에 실려 가기 직전으로 설사가 심했고 한 사람은 설사로 아무 것도 못 먹고 이틀 사이 2키로가 빠졌다 했다. 제일 어린 오십 대 혼자만 멀쩡했다. 차를 운전했던 친구는 제일 시골에 사는 나를 열한 시 직전에 집까지 데려다 주고 차례로 각자 집 앞에 내려 주고 자기 집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기 차에다 실례를 하고 말았단다. 그녀도 병원에서 일 주일 분 약을 처방받더니 며칠 후 왠지 초음파까지 찍었다 했다.


이 무슨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인가.


이 가을, 아바와 함께한 음악회, 웃지 못 할 추억의 한 장이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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