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임자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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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건축 경기가 좋은지, 제주는 지금 사방이 신·증축이다. 무심코 눈을 주면 도처에 집들을 올리고 있다.

몇 년 전 한때 건축 규제 완화로 연립주택을 다퉈 짓더니, 그 분위기가 도로 부활하는 모양새다.

세상물정 어두운 데다 이 분야에 숙맥이라 속사정엔 밝지 못하나, 정도를 넘는다는 생각이다.

내가 사는 동쪽 읍내, 옛 북제주군 들머리 두 마을 간 빈터를 새 집들로 메워 가는 형국이다.

동산을 허물고 암반을 깎고 파는 굉음에 한동안 시달렸다. 한두 해 사이 아파트다, 단독이다, 공동주택이다 하면서 두 마을의 경계를 집들로 이어 놓는다.

배산임수(背山臨水)라 집터로 입지 최고일 것이다. 집 서른 남은 채를 짓더니 새 동네를 이루기도 했다. 지도를 바꿔 놓았으니 놀랍다.

걷기운동 가는 만세동산 길 건너에도 큰 아파트를 올려 분양하고 있다. 생각지 못하던 곳이다.

‘구경하는 집 오픈!’ 모델하우스를 대신해 내건 새 아이디어에 웃음이 나온다.

상관없는 일이나, 어느 정도 분양이 될지 궁금하다. 시내에 가까운 곳이라는 조건이 상수(常數)로 작용할까.

먼 데만 바라보다 어느 날 이 흐름이 목전에 와 있어 놀랐다.

급기야 건축 붐이 동네로 흘러들지 않았는가. 덤불숲이던 공터에 장비들이 들어선다.

굴착기가 휘젓고 다닌 게 고작 사나흘, 그새 푸른 숲이 지워지고 없다.

오랫동안 한 울담을 끼고 있었는데, 하루아침 새 사라진 숲이 허망하다. 5월 한나절을 여러 홰로 울던 물오른 장끼 소리, 화답하느라 푸드덕 낮게 날아 숲이 휘청하던 까투리의 날갯짓을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사철 야무지게 피고 지던 들풀들의 모진 삶 그리고 온갖 새들 내왕이 삽시에 끊겨 버린다.

망실(亡失)은 허무한 것이다. 이곳에 삶을 부려 사반세기 남짓인데, 숲과는 이렇게 인연이 다했다.

당장 건축 현장을 바투 끼게 되자 문제가 생겼다.

풀풀 날리는 먼지와 지속적인 소음의 고통을 어떻게 견딜까.

취락구조 개선이라는 애초의 취지가 퇴색해 버렸으니 그도 안된 일이다. 인사 한마디 없다며 항의하자는 소리도 있고 어수선하다.

늦게나마 땅임자가 찾아왔다. 초면인데, 사람이 달라 보이더니 대화가 잘돼 갔다.

내가 무슨 요구를 내놓은 것도 아닌데, 서슴지 않고 풀어놓는다.

우선 집 둘레에다 높이 방진막을 치겠다, 건축이 끝나면 집체를 물로 씻어 페인트칠을 하겠다더니, 말없이 쳐다보는 내 눈을 향해 현장에 면해 있는 울타리를 허물어 제주 돌로 쌓아 준단다. 블록 담장보다 더 좋은 걸 염두에 둔 얘기로 들린다.

내가 할 얘기를 그가 다해 버린 셈이다.

말하는 이의 눈빛에 진정성이 고여 있다. 별 말 않고 웃기만 했다.

나보다 한참 연하로 보이는 분. 차 한 잔 마시고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뭐라 물고 늘어지면 가탈이 된다.

높은 건물이 들어서면 사생활이 침해될 게 빤하나 입을 다물었다. 가진 자라고 행세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다. 합의다.

4층 2동, 7층 1동이 서고 39세대가 입주하면 동네가 확 달라질 것이다. 규모가 클 뿐, 내가 집 짓고 들어왔듯 언젠가는 건축하게 된 땅이었다.

거둬들일 수밖에 없다. 동네 끝자락을 차지할 때부터 나온 운세가 아닌가.

땅임자에게 양식이 있다. 그도 입주한다니 새 인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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