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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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사회부장
9년 전인 2007년 9월 16일 태풍 ‘나리’가 할퀴고 간 흔적을 쫓아 취재를 하게 됐다.

급류에 떠밀려온 차량은 포개지거나 뒤집어졌다. 집과 가게, 시장에는 진흙뻘이 들어찼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 쓰레기더미에 사람들은 망연자실했다.

수마(水魔)가 할퀴고 간 자리에는 한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섬 전체가 물에 잠겼다 나온 듯했다.

무엇보다 13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외도동 월대천변 조립식 건물에 살고 있던 50대 부부는 집이 쓸려가면서 목숨을 잃었다. 승용차를 몰고 용담동 한천 교량을 지나던 30대는 급류에 떠밀려갔다. 사라진 차량과 운전자는 용연계곡 구름다리 인근에서 발견됐다.

도남동 연립주택 지하에선 70대 할머니와 30대 며느리가 삽시간에 덮친 물에 빠져 숨졌다.

안타까운 사연과 장면은 생생하게 각인됐다.

가을 태풍이 무섭다. 1959년 9월 16일 밤부터 17일 새벽까지 제주섬을 할퀴고 간 태풍 ‘사라호’는 최악의 재앙이었다. 도민 11명이 숨지고, 107명이 다쳤으며, 3만 여명의 이재민이 나왔다. 1985년 10월 4~5일 태풍 ‘브랜다’는 인명 피해가 가장 컸다. 도민 11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되는 등 20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1904년부터 2015년까지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은 모두 345개다. 월별로 보면 8월(125개)이 가장 많았다. 이어 7월(105개), 9월(80개), 6월(23개) 순이었다. 지난 112년 동안 10월에 영향을 미친 건 10개뿐이었다. 가을 태풍이 흔치는 않지만 제주에 깊은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태풍 ‘차바’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비는 했다지만 인명(1명 실종)과 재산 피해는 막을 수 없었다.

태풍이 내습하기 전 해안지역의 피해는 예견됐었다. 바닷물이 밀려오는 만조와 겹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태풍 ‘나리’ 때 용담동 복개천에서 차량과 사람이 쓸려나간 그 자리에서 또 재앙이 덮쳤다.

태풍의 길목이라고 누누이 강조하지만 대비는 허술한 것 같다.

제주시 도심에는 한천, 병문천, 산지천, 독사천 등 4개 하천이 관통하고 있다. 홍수 피해가 날 수밖에 없는 자연 지형에다 복개천 등 인공 구조물은 피해를 더욱 키우고 있다.

태풍 ‘나리’의 악몽을 겪은 제주시가 2010년부터 대토목 공사를 벌였다. 950억원을 들여 4대 하천 상류에 저류지 12개를 구축했다. 인구가 밀집한 하천 하류가 범람할 위기에 놓이면 수문을 열어 물을 저류지에 가둬놓기 위해서다. 총 저수용량은 163만t 규모다.

저류지 덕분에 피해를 막은 건 사실이다. 2012년 태풍 ‘산바’(강수량 843㎜), 2014년 태풍 ‘나크리’(1182㎜) 내습 시 물폭탄이 쏟아졌지만 저류지 덕분에 제주시 도심은 물바다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7월 태풍 ‘찬홈’이 이틀간 1432㎜의 폭우를 퍼부을 때 한천저류지(89만t)의 수문을 열지 않았다. 당시 산간에 더 많은 비가 올 것으로 보고 저류지마저 물이 넘쳐날 경우 도심이 쑥대밭이 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예상은 적중했다. 마침 산간에 내리던 빗줄기가 가늘어졌기 때문이다. 한천저류지에서 하류인 용담2동까지 하천수가 내려오는 데는 1시간이 걸린다. 당시 담당 공무원은 수문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고민을 했다고 한다.

지난 5일 태풍 ‘차바’가 강타한 가운데 한라산 북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수는 한천 제2저류지(50만t) 옆으로 비껴 나갔다. 제2저류지는 한천 원류보다 10m 높은 곳에 있어서다.

이참에 저류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실물을 축소한 모형을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내년 가을 태풍이 닥치기 전에 사이렌 소리만 요란히 내지 말고 저류지를 더 깊게 더 든든히 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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