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을 부르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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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시행되면서 한국 사회가 부산하다. 법의 적용 대상인 중앙행정기관이나 학교, 언론사는 물론이고 개인 사업체들도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거세게 밀려온 변화의 물결 위에서 모두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변화의 물결이 가장 큰 곳은 음식점들이다. 고급 횟집, 한정식 집 등은 손님의 발길이 뜸하고 김치찌개, 짜장면 집들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는 모양이다. 그 동안 관행으로 이뤄지던 환자 청탁이나 의료진에게 건네는 선물도 서서히 자취를 감춰간다는 소식이다. 또 초대권으로 많이 사용돼온 공연 관람권 판매가 부진하고 대학들도 신입생 유치에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란다. 주말 골프장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한국 사회가 김영란법이 몰고 온 태풍의 영향권 아래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형국이다.

법으로 음식 접대와 선물까지 규제하는 게 정상적인 사회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한국 사회는 가슴 아프게 받아들여야한다. 그 당위성은 법이 시행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로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는다. 고급 음식점이나 골프장에 손님들의 발길이 뜸하다는 건 그 동안 접대하거나 접대받는 사람들이 주로 그곳을 찾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입원과 환자 진료 등 병원 업무에 변화가 있다는 건 청탁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고 대학들이 신입생 유치를 위해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는 건 떳떳치 못한 뭔가가 오고갔다는 방증일 뿐이다.

사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알게 모르게 너무 많이 썩어 있었다. 위장 전입이나 부동산 투기 정도는 지도층의 결격 사유로 잘 거론되지도 않는다. 그 보다 더 한 일이 너무 많은 탓이다. 그런데도 누가 선뜻 나서지 않는다. 어느 정도 줄만 잘 잡으면 자신도 단맛을 볼 수 있다는 알량한 기대 때문에 모두가 알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너나 할 것 없이 공범자로 낙인찍혀도 할 말이 없는 처지다.

최근에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스폰서 검사와 남의 돈으로 호화 외유를 한 언론인 얘기는 어쩌다 한 번 접하는 뉴스가 아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런 뉴스에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만큼 길들여져 있다. 한국 사회가 오금을 못 펼 정도로 부패 고리에 꽁꽁 묶여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미풍양속의 틀을 훌쩍 벗어난 접대와 선물이 판친다는 건 이제 세 살짜리들도 안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뇌물의 판단기준으로 곧잘 대가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곤 한다. 가족도 아닌 사람들이 많은 액수의 돈을 주고받아도 대가성만 없으면 괜찮다는 식이다. 받는 자들의 논리라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국민 정서는 차치하고 주는 사람의 입장만 조금 헤아려도 절대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금품은 어느 사회에서나 노동의 대가나 보상으로 주어지는 게 보통이다. 어렸을 때 집에서 심부름을 하고 용돈을 받았던 기억만 되살려보아도 그 정도는 쉽게 알 수 있다. 어머니도 공짜로는 잘 주지 않는 게 돈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상식을 찾아야 한다. 낯간지럽게 대가성 없음에 목을 매달게 아니라 정당한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는 금품 수수는 모두 뇌물의 범주에 집어넣어야 한다. 내가 준 것 없이 금품이나 향응을 받는다면 그게 바로 뇌물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다. 가까운 친구 사이도 밥을 한 번 얻어먹으면 다음엔 내가 사야 하는 게 세상 이치다. 한국사회가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제 김영란법이라는 칼로 몸에 퍼진 암세포를 도려내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미풍양속이라고 덮어두기엔 병이 너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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