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과 연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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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택진 논설실장
한국은 좁은 사회라고들 말한다. 모르는 사람도 몇 다리만 건너면 얼추 ‘아는 사이’로 통하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해 몇 년 전 국내 한 대학연구소가 실시한 ‘한국사회의 연결망 조사’가 흥미롭다. 이에 따르면 한국인의 사회연결망을 과학적으로 조사한 결과, ‘3·6’이라는 수치가 나왔다. 이 수치는 “한국사회에서는 3·6명만 건너면 누구나 다 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전혀 모르는 사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서너 다리만 거치면 다 통하게 된다는 얘기다.

▲연장선상에서 우리 제주지역의 사회연결망 수치는 어떻게 될까. 이 조사 결과는 아직 없다. 하지만 유추는 가능하다. 한국사회에서 서너 다리를 건너면 되니, 제주사회에서는 한 두 다리만 건너면 다 통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제주사회는 참 좁을 뿐아니라 이런저런 연줄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삼촌과 조카, 형님과 아우 사이는 부지기수다. 과문한 탓일지 몰라도 필자는 가끔 신문 부고란에서 놀라는 경우가 있다. “어 이들이 형제자매였고, 동서지간이었던 거야” 한 두 다리 정도가 아니라, 평소 각각 알던 이들 조차도 혈연 친지 관계로 소개될 때 새삼 제주사회가 좁다는 걸 느낀다.

▲사회연결망 수치가 낮다는 건 좁은 지역에서 연분을 중시하는 성향이 짙다는 걸 의미한다. 혈연을 매개로, 지역을 근거로, 학연을 중심으로 엮이고 뭉치는 일이 다반사인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의식이 오랜 기간 제주사회를 통찰하는 키워드가 됐다. 물론 이런 유대가 나쁘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줄문화는 긍정적인 측면 못지않게 어두운 병리를 파생시킨 것도 사실이다. 그를 매개로 음습한 청탁의 고리가 형성되고, 선거철엔 그 연줄이 판세를 가늠하는 변수가 되기도 했다. 유감스럽게도 민선단체장 시대 이후 이 사적 연고가 공적 네트워크를 압도하면서 온갖 병폐를 양산시켜왔다.

▲말 많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오늘부터 시행된다. 여러 애매모호한 사항들로 혼란이 우려되지만, 법의 궁극적인 취지는 백(배경)이나 연줄이 없는 사람도 손해보지 않는 사회를 지향한다.

이를 실현하기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선물이나 접대 등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인맥을 통해 말로 전달되는 청탁까지 막을 도리가 있겠는가.

결국 김영란법의 성패는 뿌리 깊은 우리의 의식구조를 얼마나 쓸어내느냐에 달렸다. 우리 연줄문화도 ‘끼리끼리’가 아니라 합리성과 법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바꿔져야 하지 않겠나. 그게 시대적 요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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