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보이는 '여행 같은 삶'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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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알콩달콩, 제주 정착민의 이야기

최근 귀농·귀촌 열풍과 함께 제주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해마다 제주에 정착하기 위해 이주해 오는 주민들이 증가하고 있다.


실제 2009년까지 줄곧 감소세를 보이던 순이동인구가 증가세로 전환되기 시작한 후 2014년 1만1112명에서 지난해에는 1만4257명이 제주로 유입되는 등 전입자 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성공적으로 제주에 정착해 생활하고 있는 이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제주 생활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한다
 

▲ 고재영.김경희씨 부부

▲"매일 바다가 깨워주는 꿈 같은 아침, 새로운 귀촌.귀농인의 조력자 될 것"

6년차 도민 고재영.김경희씨 부부


서귀포시 표선면에서 감귤 농사와 함께 펜션을 운영하는 고재영(62), 김경희(60·여)씨 부부는 6년전 제주로 내려와 정착한 늦깍이 제주도민이다.


아름다운 표선 바닷가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지어진 펜션에서 만난 고씨는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말로 첫 인사를 나눴다.


고씨는“처음 제주도에 왔을 때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 표선에서 제주시나 서귀포시내를 갈 때 사람들이 마치 먼길을 가는 양 준비하는 것”이라면서 “서울에 살 때는 다리 하나 건너는데도 1시간 넘게 걸리는 곳도 있기 때문에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이제는 저 조차도 제주시에 가게 되면 ‘아이고 언제 거기까지 갔다오느냐’고 걱정부터 하게 된다”면서 “제주시와 서귀포시 사이가 멀게 느껴지면 제주도민이라는 우스겟 소리도 있던데 정말 그렇더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서울에서 의류업계에 종사하다 건강 등의 문제로 사업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내려왔다는 고씨 부부는 당초 부부끼리 여행도 다니고 여가를 즐기는 등 휴양생활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언제까지고 이방인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고씨는 농사를 짓고 펜션을 운영하는 등 새로운 ‘생활’을 가져나가며 제주 사회에 녹아들었다.


고씨는 “한 2년을 아무 일 없이 놀고 먹었는데 마을주민들로부터 눈치가 보이더라”면서 “그래서 당초 계획과는 달리 이렇게 감귤농사와 함께 펜션을 운영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처음 제주로 내려올 때 생각했던 생활과는 많이 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도 서울에서 시간에 쫓기며 살때에 비해서는 정말 마음에 여유를 두고 살고 있다”면서 “이제는 일상이 돼 감동까지는 하지 않지만 매일 아침 넓은 바다를 보며 일어난다는 것은 서울 생활할 때에는 꿈 갔았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이주민이 아닌 제주도민의 한사람으로써 귀농·귀촌을 위해 제주로 오는 이들을 돕는 서귀포시 귀농귀촌인 협의회 회장까지 맡고 있는 고씨는 “이제 제주도 생활이 몸에 배여 다른 곳에는 갈 수 없다. 이 곳에서 평생을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 '피들러 카우보이' 이탁호씨

▲"암 투병 아내 내게 돌려준 '힐링의 땅'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음악으로 보답

11년차 '피들러 카우보이' 이탁호씨

 


국내 컨트리 음악의 대부로 불리는 ‘피들러(fiddler, 미국 컨트리 계통의 음악에서 사용되는 바이올린의 연주자) 카우보이’ 이탁호씨(61)도 올해로 제주에 정착한지 11년차를 맞이한 이주민이다.


오랫동안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미국과 서울을 오가던 이씨는 부인과 함께 은퇴 후 정착할 곳을 고르는 과정에서 제주도를 선택하게 됐다.


이씨는 “집에서 부인과 함께 지도를 쫙 펼쳐놓고 어디가 좋을까 하나하나 고르던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곳이 제주도였다”면서 “우선 우리나라인 점을 비롯해 공기와 자연환경이 좋고, 여유로운 곳이기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 아니냐. 나이를 먹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제주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그렇게 시작한 제주 생활이지만 한동안은 6개월마다 미국과 제주를 오가는 ‘여행객’과 같은 생활이었다. 그런 이씨와 제주의 인연을 강하게 만들어준 것은 아내의 암이라는 의도치않은 불행이었다.


이씨는 “미국에서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는 것은 여러가지 사정상 어려울 것 같아 영주권을 포기하고 제주에서 수술을 받았다”며 “그 후 아내와 함께 제주 곳곳의 산과 숲, 바다를 다니는 등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여유있는 생활을 했더니 2년전 아내가 완치판정을 받았다. 제주가 아내를 나에게 돌려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 후 제주에 완전히 정착한 이씨는 2014년 오름콘서트, 지난해 곶자왈 콘서트에 참여하는 등 제주를 위한 음악활동에 나서고 있다.


이씨는 “제주가 나에게 아내를 돌려준 만큼 제주를 위해 배풀려고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음악밖에 없다”면서 “제주를 위한 음악공연과 함께 곶자왈 생태해설사 교육을 받는 등 제주 자연에 대해 공부를 시작해 이제는 곶자왈 홍보대사로도 임명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는 사람들에게 제주의 좋은 점, 자연에 대해서 알려주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등 제주에서 완전히 자리를잡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 '초보농부' 이현정씨

▲"머리 복잡해지는 이슈들 내려놓으니 땅과 재충전하며 아빠 행복 찾았어요

2년차 '초보농부' 이현정씨

 


마지막으로 만난 이주민은 이제 제주에 정착한지 1년 9개월째를 맞이하는 따끈따끈(?)한 신입 이주민이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현정씨(40)는 2살 연하의 아내와 4살된 딸과 함께 제주 생활에 열심히 적응하고 있다.


서울에서 11년간 시민사회단체에서 근무하면서 동북아 평화 통일 등의 이슈캠페인과 시민교육, 청년대학생 조직사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해 온 이씨는 몸과 마음이 방전된 것을 느껴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새로운 생활에 나서기로 했다.


본격적인 농촌 생활에 앞서 재충전을 위해 2년간 제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기로 하고 지난해 1월 저지리에 터를 잡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터가 좋았던 것일까? 재충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그대로 제주에 뿌리를 내리고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나 애초 재충전을 위해 제주로 내려온 만큼 아무것도 준비를 하지 않았던 이씨는 생계유지를 위해 마을청년회에서 관리하는 밭을 임대, 농사에 도전하게 됐다.


이씨는 “솔직히 도시에서만 살아왔는데 농사에 대해 아는 것이 있겠느냐 정말 맨땅에 해딩하는 심정으로 농사를 시작했다”면서 “마을 형님들에게 물어보고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기술을 배우는 등 어찌어찌 처음으로 콜라비 농사를 지었는데 인터넷 직거래로 완판을 하는 결실을 거뒀다 ”고 뿌듯한 심정을 밝혔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제주에 정착한 이씨가 아직도 애를 먹고 있는 것은 바로 제주어(語)라 불리는 사투리.


이씨는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마을 청년회 회원들 처럼 젊은사람들의 말은 어느정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됐다”며 “하지만 아직도 마을 어르신들과 대화를 할 때는 못알아 듣는 말이 더 많아 그냥 고개를 숙이며 ‘예, 예’하며 알아듣는 시늉만 하고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제주 생활을 하면서 가장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씨는 ‘언제나 가족들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씨는 “서울에서 생활할 때는 저도 아내도 바빠서 일상적인 대화도 힘들었다”며 “그런데 제주에 내려온 후에는 가족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놀면서 같이 생활하니까 행복감은 몇배나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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