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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화/수필가
3년 전, 어머니는 낙상 사고로 고관절을 다쳤다.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으나 상처가 다 아물기도 전에 재활치료와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처방과 함께 병원을 나와야 했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수술로 경황이 없었으나 우수한 의료진과 치료시설을 갖춘 재활병원을 수소문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전전긍긍하며 기다리기를 며칠. 운 좋게 병실이 생겼고 어머니는 입원을 했다. 이 병원에는 전문 간병인이 상주하고 있어서 가족들이 면회는 할 수 있지만 직접 간병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세 명의 간병인이 교대로 돌봐준다지만 수술을 받은 노모가 홀로 병원에 누워있는 게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시설도 깨끗하고 간병인도 여럿이어서 안심하고 병원 문을 나섰다.

어느 날 간식을 사 들고 어머니를 뵈러 갔을 때였다. 갈 때마다 어머니의 안색이 점점 나빠지고 어떤 불편함을 참고 있는 것만 같아서 속이 상했다. 젊은 시절부터 곧은 성정으로 자식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던 어른이어서 저러지 싶었다. 처음엔 수술 후유증으로 그러겠지 하는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 찼다.

그 날도 어머니가 원하는 물품과 간식을 들고 병원을 찾았을 때였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어머니는 굳은 표정으로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어머니”하고 불러도 대답조차 없었다. 한참이 지나자 어머니가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여기선 매일 노인들이 죽어서 병실을 나간다. 그걸 보느니 나 혼자 집에 가서 있는 게 낫겠다. 나 혼자 살 수 있으니 걱정 마라!”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재활보다는 요양이 필요한 노인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이었다. 그 중에는 심각한 치매환자들이 많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고, 이따금 유명을 달리하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괴로웠던 것이리라. 어머니 바로 옆 병상에는 몇 년 채 사경을 헤매는 중증 호스피스 환자가 입원해 있었다. 그들과 침대를 마주해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왜 헤아리지 못했던가. 어머니는 비록 거동은 불편했지만 정신은 지극히 맑았다. 그런 분이 중증 환자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장마가 시작되었는지 오후 들어 세찬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바로 앞의 장애물도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전조등을 켜고 차를 몰았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머릿속은 여전히 어머니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동안 수없이 오가던 길이었지만 상념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다른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좌회전 길이 나오자 어림잡아 차를 돌렸으나 첩첩산중의 낯선 길이 나타났다. 방향을 잃었다는 생각에 일단 차를 갓길에 세워놓고 정신을 수습했다.

차 안에서 밤을 새워야 할 것을 걱정하며 머리를 의자에 기대는데 갑자기 하늘이 올려다 보였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던가. 순간, 내가 지금까지 반대 방향으로 달리며 오름 몇 바퀴를 돌았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새소리가 시끄러운 건 이쪽으로 오지 말라는 신호였다. 영물인 새가 자연의 법칙을 알려주었으니 이젠 내가 정신을 차릴 차례였다.

새소리를 뒤로 하고 좁은 길을 내려오다 보니 멀리 마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악몽에서 벗어난 듯 온몸을 감싸던 긴장감도 풀렸다. 마치 무엇엔가 잠시 홀린 것만 같았다.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느낌도 들었다. 요양병원을 재활병원으로 알고 들어갔다가 낭패를 본 어머니의 마음이 저랬지 싶었다.  

지금 어머니는 퇴원하여 평생 살아온 집에서 마음 편히 지낸다. 어머니의 고관절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이제는 노환까지 겹쳐 고생이 심하지만 표정은 한결 밝다. 나는 어머니가 늘 슈퍼우먼인 줄 알고 늙지도 아프지도 않을 것이라 믿어왔다. 그런 어머니가 혼자서는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렇게라도 내 곁에 머물며 맑은 정신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다.
구십 평생 그랬던 것처럼 남은 시간도 어머니의 정신줄이 튼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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