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모정(母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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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새로운 걸 배우려면 오래전에 형성된 낡은 자신을 포기하고 낡아빠진 지식을 죽여야 한다고 한다. 가령 즐겁지 않아도, 넓은 시야를 트기 위해 좁은 시야를 접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낡지 않고, 접고 더 덜어낼 수도 없는 게 있다. 새끼에 대한 어미사랑이다.

TV에서 야생들의 모정을 보고 깨닫는다. 평범한 것은 비범했다.

조롱이와 원앙새가 한탄강 위를 가로지른 다리 밑 둥지에 알을 품었다. 원앙새가 공교롭게도 수릿과 조롱이와 이웃 지었다.

조롱이가 거칠게 공격해 온다. 알을 사수하려 원앙새도 물러나지 않는다. 죽기로 저항하다 깃털이 뽑히고 크게 다친다. 그래도 결과는 황홀했다. 피 묻은 알에서 새끼 네 마리가 태어났다.

얼마 후, 새끼들을 강물로 떨어뜨려 옆에 끼고 흐르며 삶의 방식을 학습시킨다. 훈육하는 것이다. 이웃에서 부화한 조롱이 새끼가 헛발을 디뎌 강에 빠졌다.

벽으로 오르려 바동대다 추락해 떠 내린다. 굽어보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어미 조롱이. 부리를 벌린 채 죽어 가는 새끼 따라 낮게 난다. 새끼의, 파닥이다 접는 날갯짓!

새끼들을 품으려 솔가리로 둥지 둘레를 에워싸고 덮는 청설모. 까치에게 들키고 만다. 사력을 다해 까치의 공격을 뿌리친 어미.

일단 들키면 비상이 걸린다. 갓 태어난 벌건 몸뚱이 배냇짓 고물거리는 걸 입에 물고 은밀한 곳에다 놓는다. 숲속 나뭇가지 틈을 살처럼 내달리는 어미청설모. 보호본능이 내는 속력은 질주다.

주꾸미 새끼는 빈 고둥껍데기 속에서 태어난다. 그 어미, 알을 지키며 지나는 물고기들에게 한 입씩 뜯겨 여덟 다리가 하나도 없다.

종국에 뭉텅해진 몸통을 둘러싸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 포식자 불가사리. 삽시에 주꾸미의 실체가 사라지고 없다. 존재의 무화(無化)다. 대신, 새끼들을 남겼다.

갯벌 낙지는 알을 갯벌 구멍에 낳는다. 흙탕에서 나고 자란 녀석이 흙에 생명을 놓아 흙의 모성(母性)대로 한 생을 살려는 것. 성스러운 탄생의 역사(役事) 뒤, 어미는 검게 물들어 버린다. 사색(死色)이다.

옥돔처럼 불그스레한 검은 줄무늬의 희한한 물고기가 있다. 암놈이 알을 무덕무덕 낳으면 뒤에서 입을 좍 벌렸다 받아먹는 수놈. 한 번, 두 번, 세 번. 먹는 게 아니라 알을 머금는다. 알에 산소를 공급하려 간간이 뱉었다 도로 넣는다.

8일, 10일이 지나고 새끼로 부화하는 알들. 새끼들을 바다 속으로 밀어낸다. 탄생의 순간이다.

그사이 알을 머금은 채 몇 날 며칠을 굶었다. 옆구리에 까맣게 번지는 섬뜩한 조짐, 시간이 떠나 버렸다. 둥둥 떠 내린다.

어릴 적 기억이다. 달걀을 품은 어미닭은 어김없이 스무 하루째 병아리를 깼다. 그때부터 어미닭은 소리 지르며 거칠고 황급해 간다.

마당에서 멀뚱거리는 누렁이가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날개를 파닥이며 쪼려 달려든다. 멋쩍게 뒷걸음질 하는 누렁이가 미련해 보였다.

휘익, 솔개가 검은 그림자로 덮치는 찰나, 병아리를 낚아챈다. 불가항력이다.

하지만 포식자의 내습에도 소리를 질러대며 양 날개 속에 새끼 여남은을 품는 어미닭. 죽음을 무릅쓴 모성본능이다.

사람만 그런 게 아니다. 어미는 강하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자식에 대한 어미의 정만큼 절박한 것은 없다. 목숨도 내놓는다. 그게 모정(母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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