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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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조직이 복잡해지다 보면 전문 분야별로 역할이 세분된다. 리더가 있고 그를 중심으로 조직을 효율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인적 구성이 갖추어지게 되는 것이다. 정부 부처나 정당 등 공공기관에 으레 있는 대변인이라는 직책도 그런 자리 중 하나다.

청와대 등 주요 부처의 대변인은 언제나 조직의 입으로 뉴스에 등장한다. 인사와 논평, 성명 등 다양한 뉴스들이 대변인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대 언론 창구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역할이 썩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일방적인 발표 창구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그 속에 담긴 내용도 미리 준비된 것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심도 있는 질의 답변이나 쌍방향 교류는 여간해선 찾아보기 어렵다. 알릴 것만 알리면 된다는 식이다. 입이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귀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대변인의 존재 이유가 이처럼 발표만을 위한 것이라면 잘못된 것이다. 민주화,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도 않고 국민주권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기능적이라기보다 권위주의적이다.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판을 걷어버리는 건 국민에 대한 서비스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조직에서든 대변인이 차지하는 위상으로 볼 때 그 안에서 돌아가는 걸 모두 아는 게 쉽지 않다. 설령 안다고 해도 그걸 자기 재량으로 말하는 건 더 어렵다. 국민을 위한 진정한 입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정당의 대변인은 또 다른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 한 때 상대 당을 향해 얼마나 강력한 독설을 날리느냐가 대변인의 능력을 판가름하는 잣대처럼 여겨진 적도 있었다. 실질적으로 뭔가를 대변하기보다 공격수, 싸움꾼으로서의 역할이 더 부각됐던 것이다. 세상이 평화스러워지고 정치가 생산적이려면 차라리 대변인이 없는 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갖게 할 정도였다.

뉴질랜드에서는 대변인이라는 걸 따로 두지 않는다. 정부 부처는 장관들이 실질적인 대변인이고 야당은 그림자 내각의 예비 각료들이 대변인이다. 그들이 정책을 홍보하고 질문에 답한다. 외교, 국방, 교육, 통상 등 각 분야에서 그 업무를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책임 있는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조직의 입이 되는 것이다.

여당과 야당의 리더인 총리와 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가장 많이 나서는 게 총리와 야당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월요일마다 열리는 각료회의가 끝나고 나서 기자들 앞에 서는 건 총리이고 야당의 주요 정책 방향에 대해 언론에 설명하는 건 야당 대표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정을 이끌어가는 책임자로서, 또 국정을 이끌어갈 지도자로서 국민에 게 자신들의 정책을 알리고 지지를 이끌어내는 게 더 없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좀처럼 남의 입을 빌리지 않는다. 그게 국민에 대한 서비스이고 책임 정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과 비슷한 대변인 제도를 운용하는 미국도 부서의 최고 책임자가 직접 나서는 경우는 많다. 미국 대통령들이 종종 백악관 기자실에 나타나 중요 발표를 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은 친숙한 풍경 가운데 하나다.

한국의 지도자들도 스스로 대변인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자주 기자들 앞에 나서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하고 국민이 가지는 궁금증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든지 최고의 대변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자세만 가슴 속에 확고하게 다지고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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