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벌초하지 않는 무덤, 쓸쓸한 골총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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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음력 8월 1~15일 행해지던 추석맞이 연중 행사
외국 등 출타했다가도 돌아오던 중요한 세시풍속
매장문화 변하면서 점차 축소되고 대행업체 생겨나
▲ 제주 사람들은 생산력이 낮은 섬의 곤궁과 부모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마음의 짐 때문에 돌아가신 조상신을 위한 정성을 들이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사진은 벌초를 하고 있는 모습.

▲조상 없는 자손은 없다


어느 해보다 유난히 더웠던 2016년도 어느덧 음력 8월 추석을 앞두고 온 들녘이 소란스럽다. 제주에서는 해마다 추석 전 8월 초하루를 기점으로부터 추석 전까지 약 보름 동안 조상의 무덤을 깨끗하게 단장한다. 1년에 한 번, 마치 산 자들의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처럼 명절을 앞두고 벌초를 한다. 이 세시의례 풍속은 사람으로서(人) 조상에 대한 의리(義), 곧, ‘예의(儀)’라고 할 수 있다.


제주의 이 세시풍속을 벌초, 또는 소분(掃墳)이라고 하는데 ‘풀(草)을 친다(伐)’라는 의미에서 벌초(伐草), ‘무덤(墳)을 깨끗이 정리한다(掃)’라는 뜻에서 소분(掃墳)이다.


조상 없는 자손은 없다. 역사라는 말 자체가 대대로 사람이 살았던 내력이 아니던가. 대를 잇는다는 것은 역사를 잇는 과정이다. 대를 잇고 사는 것은 죽은 자들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고 가문의 번창과 영화(榮華)를 위한 종족 보존의 노력이다. 무덤을 만들어 산담을 쌓고, 그것을 관리하는 것은 늘 자손의 몫이다. 자손을 가르치는 조상의 마음은 자기를 중심으로 자기 가문의 세계를 유지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자손은 언젠가는 조상이 되고, 그런 조상 또한 한때 자손이라는 수순을 거친다.


살아있을 때보다 유독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정성을 들이는 제주 사람들의 근본정신은 무엇일까. 생산력이 낮았던 섬의 곤궁 때문에 부모를 살아계실 때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회한(悔恨)의 반작용일까. 조상에 대한 숭배의 노력이 역으로 힘든 일상을 극복하기 위한 자손 된 사람들의 미래를 위한 기대 심리가 아닐까.


역사는 인간의 총체적 삶의 흔적이다. 역사는 시공간을 넘어선 인간들의 대화이고 인간들 간의 상호 이해(利害)의 산물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경제적인 동물이다. 인간 행동의 궁극적 목적은 실리(實利)를 추구하는 것이다. 인류의 시원 이후 인간관계의 설정은 경제적 이익을 위한 상호 간 갈등과 협력의 결과였다. 정치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경제적 관계 때문에 생긴 이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에 대한 약탈적인 정치 표현, 즉 정치의 최고 형태를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벌초의 문화사


벌초가 시작되는 음력(태음력) 8월 초하루(1일)는 양력(태양력)으로 9월 1일경이다. 본격적인 벌초의 시기에 속하는 음력 8월 초하루와 음력 8월 15일 추석 사이에는 24절기 중 백로(白露)가 포함돼 있다. 절기(節氣)란 태양의 황경에 따라 1년의 계절을 24절기로 나눈 것으로, 24절기는 태양력을 바탕으로 한 세시가 되는데 절후(節侯), 시령(時令)이라고도 부른다. 24절기는 춘분점을 기점으로 하여 태양의 황도를 따라 움직인 각도에 의해 절기가 구분된다. 황경이 0도일 때 ‘춘분(양력 3월 21일경 )’을 말하고, 15도일 때 ‘청명(양력 4월 5일경)’ 등 각각 15도씩의 변화에 따라 절기를 나누는데, 황경이 365도이면서 0도가 되는 춘분 15일 전 경칩(驚蟄)은 황경이 345도가 되는 것이다.


추석이 가까워져 올수록 절기는 가을로 접어든다. 황경 165도가 되는 백로(白露)는 양력 9월 7일경이 되는데, 백로에 대한 옛사람들의 절기 관찰을 보면, “기러기가 날아오고 제비가 돌아가며,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하고 천둥이 그친다. 겨울잠 자는 벌레가 흙을 판다”고 한다. 백로부터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이 상강(霜降·양력 10월 23일경)까지 지속한다. 아무튼 제주 사람들은 백로부터 추석(秋夕·9월 15일경) 전까지 벌초 하여 명절에 조상을 맞을 준비를 끝내야 한다.   


벌초는 적어도 제주에서는 가장 중요한 세시풍속이다. 하여 세간에는 “식게 안 한(아래아) 건 놈 몰라도 벌초 안 한(아래아) 건 놈 안다(제사 지내지 않는 사람은 남들이 몰라도 벌초하지 않는 사람은 표시가 난다)” 고 하여 남의 이목을 보면서 당연히 벌초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제사야 집안에서 지내기 때문에 어찌 지내는지를 남들이 몰라도 무덤은 들이나 오름, 혹은 밭과 같이 공개된 장소에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무덤에 벌초하지 않게 되면 오가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나무라게 되는 것이다.


▲벌초하지 못하면 골총이 된다


‘초상어신(조상 없는) 자(아래아)손(자손)도 이서?(있을까?)’ 라면서 비웃거나 아무리 잘난 사람에게도 ‘죽은 아방 곡두에 풀도 안 그치는 놈!’이라고 후래 욕을 한다. 그래서 벌초를 당연시하는 의무감을 강조하는 말로 조상들은 “추석 전에 소분 안 하(아래아)민 자왈 썽 멩질 먹으레 온다(추석 전에 벌초 안하면 가시덤불 쓰고 명절 지내로 온다)”라는 것이다. 다른 의례에 비해 벌초 때가 되면 객지로 출타한 제주 사람들이 많이들 내도한다.

 

심지어 일본에 사는 재일 제주인들도 벌초를 하러 고향을 방문한다. 지금은 제초기가 일반화되었지만 십수 년 전만 해도 손 낫으로 일일이 풀을 벴다. 자동차가 없을 때는 자손들을 나누어 각각의 장소에 벌초 할당량을 분배했다. 그럴 때는 하루에 한 자리(무덤 1기)도 벅찼다. 그래서 벌초 때가 되면 사람 수를 헤아리고 노동력을 챙기게 된 것이 벌초가 제주의 중요한 세시 풍속이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산업사회라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점점 시간이 돈인 사람들의 바쁜 일상 때문에 전통사회의 유산인 벌초 문화도 사라지는 추세다.

 

장법도 화장으로 바뀌면서 더 이상 매장도 줄어드는 추세다. 그래서 요즘은 벌초 대행 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벌초 비용은 적게는 1기당 7만원에서 10만원까지인데 가족들이 벌초를 못 하게 되면 벌초 대행 비용을 거둔다. 결혼 기피 현상에 자손까지 귀한 시대가 되다 보니 벌초는 고사하고 있는 무덤도 관리하기 어렵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벌초의 기일이 끝나도 무덤이 보이지 않게 풀이 앙상하게 자란 산(무덤)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벌초하지 않고 방치된 산들이 바로 ‘골총(古塚)’이라고 부르는 무덤들이다. 골총은 갑자기 집안의 대가 끊겨 벌초할 수 없는 경우, 조상 산의 위치를 잃어버려 돌보지 못하는 경우, 친·인척들이 외지로 출타하여 산을 돌볼 수 없는 경우 등이 있다. 이런 골총들은 벌초나 묘제를 하지 않는 채로 남아 있어 산담 안이 무성하고 결국 무연고 묘지가 돼 강제 철거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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