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와 청국장
홍어와 청국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성기/시인

내 아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 노사연의 ‘바램’ 끝부분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니 이 한 마디가 나이 듦을 잊게 한다. 익는다는 것은 맛이 든다는 것이니 나이 들수록 맛이 드는 삶이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익는다’라는 말을 쓰고 나니 호남의 전통 음식 홍어와 청국장이 떠오르며 입 안 가득 군침이 돈다.


흑산도에서 많이 잡혀 한양으로 가던 길에 나주에서 곰삭아 맛이 들었다는 홍어는 우리나라 발효음식의 백미(白眉)다. 푹 삭힌 홍어에 한번 맛들이면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전남 서남해안 지방에선 잔치나 울력이 벌어지면 반드시 삭힌 홍어를 올렸고 홍어가 빠진 잔치는 아무리 잘 차렸어도 먹을 것이 없는 잔치라며 허전해 했다. 전라도 지방의 제사에는 홍어가 올라간다. 그러나 특유의 독한 냄새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이 많고 그 냄새 때문에 옷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이니 한번 맛 들이기가 어렵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잘 삭은 냄새라 하고 홍어를 싫어하는 사람은 썩은 냄새라 한다.


썩은 것은 부패한 것이고 삭은 것은 발효한 것이니 잘 구별해서 써야할 것이다. 집에서 된장을 만들 때 썩은 냄새와 잘 익은 냄새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발효음식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에 청국장이 있다.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청국장은 된장과 간장에 비하여 발효 시간이 짧고 단백질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여 식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청국장도 홍어 못지않게 발효과정에서 독한 냄새가 난다. 홍어 맛은 톡 쏘는 강한 맛이라면 청국장은 입 안 가득 남는 구수함이 별미다. 홍어나 청국장에서 나는 냄새를 세계인이 좋아하는 냄새로 재탄생 시킨다면 버터나 치즈를 능가하는 최고의 음식이 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 ‘청국장’이 있다.  도청국장에서 퇴임한 이 친구를 나는 놀리며 청국장이라 부르지만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알맞은 별명인지 스스로 놀랍다. 구수한 말과 행동, 남을 배려하는 넓은 마음, 주위를 편하게 만드는 소박함. 이런 청국장다운 맛과 멋은 스스로 반성하며 수십 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어제를 반성하며 쓰는 일기에서 발효된 것이리라.


잘 익어 맛이 드는 가을! 썩지 않고 곰삭아 맛이 절로 나는  그런 사람 더 많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