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들의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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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임숙/수필가

낮 시간이다. 뜨거운 태양이 아스팔트위에 내려앉은 시간, 울고 있는 매미를 품고 은행나무는 졸고 있다. 나무마다 초록빛 가지를 늘어뜨려 뜨거운 태양을 막아보지만 찌는 뜻한 열기는 가라앉지 않는다. 숨이 넘어 갈듯이 울어 대는 매미울음에 일손을 멈추고 집을 나섰다. 매미는 왜 그리 애타게 우는가.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매미의 그 애절함이 여름이 깊어 갈수록 더하다. 나는 산으로 갔다. 시 오름 입구에 들어서니 서늘한 냉기가 일순간에 더위를 씻어낸다.  햇볕이 강할수록 숲속에서 뿜어내는 냄새는 강하다. 10분 쯤 오르다보면 피톤치드 향기가 가득한 편백나무아래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독서삼매경은 천하를 얻은 위풍당당한 여유로움이다.


시 오름은 서귀포 사람들이 혼자서도 안전하게 산책 할 수 있는 산길이다. 바다, 산, 어디든 편안하고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는 곳이 서귀포에는 많다. 내가 서귀포를 사랑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마음껏 충전할 수 있는 곳, 서귀포는 그런 곳이다. 그 숲속을 따라 숨이 찬 걸음을 옮길 때마다 땀이 등골을 타고 비 오듯 내리지만 상쾌하다. 나뭇가지 사이 언 듯 언 듯 스치는 영롱한 빛이, 푸른 잎 사이로 보석처럼 부서져 내린다. 빛은 유희를 하듯 그늘지고 습한 곳을 찾아 깊숙이 묻어두었던 생명들을 움트게 한다.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크고 작은 나무들과 서로 다른 종들이 어울려 숲을 이루고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들을 잉태시키는 것이다. 나고 지는 자연의 질서 안에 그 다양한 식물들의 내 뿜는 향기는 내 안에 움추러 있던 기운을 일 깨 운다. 백합꽃 향기보다도 더 진한 숲 냄새가 좋다. 그것은 내 영혼에 깊숙이 스며들어 굳어지고 어그러진 것들을 풀어준다. 영혼이 육신을 지배하는 자유로움이다. 그것들과 같이 나란히 눕는다. 나무아래 누워 하늘을 보니 파란 단풍나무 잎들이 하늘가득 차있다. 내 육신의 흙이라 했던가? 깊은 쉼을 들어 마시며 일체를 이른다. 내 영혼은 푸르고 푸른 잎이 되어 나무가되고 산이 된다. 그 편안함은 내 본질이 흙이었음을 인정한다.
 

숲속에도 매미울음은 온 산을 덮는다. 간간이 들리던 까마귀소리도 숨이 넘어질세라 울어대는 매미울음에 물러섰는가. 소식이 없다. 무엇이 그리 절박한가. 미물의 본능을 자극한 것인가.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우는 것은 짝을 찾기 위함인가. 울음소리가 더 클수록 암컷을 구애하는 애타는 숫컷의 소리라 한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수록 매미는 더 요란하게 울어 댄다. 한여름, 세레나데를 부르며 우아하게 구애를 할 수도 있을 탠데, 그것들은 막무가내 울어댄다. 7년을 땅속에서 유충으로 보낸 생애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듯, 그 애처롭고 간절한 사연이 무더위만큼이나 무겁다. 매미는 교미가 끝나면 한 달 후 나무줄기에 산란을 하고 애벌레가 되어 땅속에서 긴 세월을 보내야한다. 유충이 매미가 되기 위한 기다림이 시간은 길고 험하다. 어느 미물이 생명을 품고 수년을 기다려 거듭 나는가. 유충이 어둠에서의 침묵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위한 순종이다.  긴 시간을 지나, 유충은 빛이 세계로 나온다. 허물을 벗어, 우화가 되는 시간은, 기다림에 대한 축복이다. 매미는 날개를 곱게 펴고 비로소 하늘을 난다. 거듭남으로 인한 기쁨, 빛으로 드러낸 자연의 위대한 실체 앞에, 매미들의 합창은 베토벤합창교향곡처럼 웅장하게 흐른다. 인간이 통제를 벗어난 대자연의 연주곡이다.


매미들은 환희의 합창을 부르는 것이리라. 어둠에서 빛이 세계로 나가는 환희, 그들의 부르는 노래는 여름이 다가도록 온 우주만상에 울러 퍼질 것이다. 만물이 빛 가운데 생명을 얻는 것, 그 진리 안에 자유를 얻는 것이다. 나는 매미들의 합창을 들으며 숲속을 걸어 나왔다. 태양은 이미 서쪽하늘에 기울고, 길가에 풀잎들이 스르르 바람을 일으킨다. 끊임없이 나고 지는 미물들의 소리 앞에, 여름은 장엄하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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