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삶에서 나쁜 관계 만들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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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엄'인 무덤은 신기루 같은 인간사 마감하는 형식
▲ 사람은 죽으면 무덤을 비롯해 어떤 형식으로 자신을 마감하게 된다. 사진은 죽은 이를 보내는 마지막 의식릉 위해 겅어가고 있는 한 유족의 모습

“새가 죽으려 하면 우는 소리가 애달프고 사람이 죽으려 하면 하는 말이 착하다.”


‘사기’에 전해오는 말로 죽음을 앞든 사람을 매우 그럴듯하게 표현한 말이다. 영원할 것 같기만 한 사랑도, 악착같이 살면서 빼곡히 쌓아둔 욕망의 인생도 어느덧 가뭄에 물이 마르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인간사(人間事). 생로병사의 허망함을 알게 되면 비로소 인간의 본성은 착하게 돌아오는가.


우리는 경험적으로 어떤 사람을 보고 예전에 그 답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면 ‘죽을 때가 됐다’는 말을 한다. 후회는 늦게 찾아오는 법이다. 인생을 갈무리할 시간이 되면 우리 인간은 잘살아보자던 탐욕보단 오로지 남은 시간만이라도 잘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세상은 온통 미친 것처럼 잘살아 보자는 욕망으로 둘러 싸였다. 잘살아보자는 욕망은 그 욕망의 실현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끝 가는 줄 모르게 달려 나간다. 그러므로 욕망은 소유의 노예가 된다. 잘 죽어보자는 말은 인생을 사는 한 방법으로 매우 상징적인 말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누군가와의 원한, 미움, 은혜를 잘 정리하자는 말이다. 이럴 때 잘 죽는 것은 역으로 ‘인생을 잘 살았다’는 말이 된다. 죽음이란 자신과 자신이 관계하던 세계가 동시에 사라진다는 말이 아닌가.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업보(業報)란 내세보다는 현실에서 나쁜 관계를 만들지 말라는 교훈처럼 들린다.  


사람이 죽으면 어떤 형식으로든 자신을 마감하게 된다. 무덤은 그 한 형식이다. 묘지의 다른 말인 무덤은 사전적인 의미로 볼 때 ‘묻다(埋)’라는 동사의 어간 ‘묻’에 명사화 접미어 ‘엄’이 맞춤법 규정에 따라 ‘무덤’으로 표기된 것으로서 ‘죽(死)’과 ‘엄’이 ‘주검’으로 표기된 것과 같은 예이다. 무덤의 한자말인 묘지(墓地)를 지칭하는 말로는 墓, 墓所, 墳, 封, 封墳, 瑩, 園, 陵, 所, 山, 山所, 墳墓, 塚, ?, 丘 등이 있다. 특히 묘지(墓地)는 묘(墓)를 말하는데, 묘(墓)는 무덤이 조성된 구역을 말하며, 분(墳)은 흙을 쌓아 만든 봉분을 가리킨다. 


죽음은 삶에 대응되는 말이다. 삶은 생명, 목숨과 긴밀하다. 특히 목숨은 ‘목’과 ‘숨’의 합성어로 목으로 숨을 쉴 때만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목으로 숨을 쉬지 않고 멈추게 되면 바야흐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 되는데, 주검은 숨을 쉬지 않는 육신을 말한다.

 

▲ 무덤을 조성하기 전 하관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죽음의 상태를 의학적으로 분류하면 심폐기능설(心肺機能說, Cardiopulmonary theory),로 본 죽음은 심장의 박동과 호흡운동, 몸의 각종 반사기능이 영구적으로 정지 된 상태이고, 뇌사설(腦死說, Brain death theory)에서의 죽음은 뇌의 모든 기능을 잃어버리고 그 상태가 회복되지 않게 되었을 때를 ‘뇌사’라고 말한다. 세포 사설 (Cellular death theory)에서의 죽음은 살아있는 몸에 필요한 모든 화학적, 물리적 또는 전기·생리적 활동을 멈춘 것을 말하는데  일명 ‘세포의 죽음’이라고도 한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상례(喪禮) 절차에서의 죽음을 맞는 의식을 살펴보면, 부모의 병환이 깊어 위독하게 되면 안방으로 모셔 임종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을 ‘천거정침(遷居正寢)’이라고 한다. 이때 염라대왕에게 편안이 운명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의미에서 환자의 방문 앞에 체시상(差使床)을 차리는데, 향불을 피우고 원미(소금으로 간을 하지 않는 미음)와 술을 준비하여 “괴로웁게 하(아래아)지 말앙 괴양(조심) 괴양 돌아가게 해줍써”라고 말하면서 원미를 숟갈로 떠서 세 번 마당으로 케우린(뿌린) 다음 술 석 잔을 다시 뿌린다. 이는 세 명의 저승차사가 망자를 데려간다는 속신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운명(殞命)은 환자가 완전히 숨을 거둔 상태를 말하는데 이때 새 솜을 환자의 코밑에 붙여서 숨이 완전히 멈췄는지 확인하게 된다.


죽음에 예의를 도입한 것이 유교다. 옛날에는 죽음에 대한 표현도 신분에 따라 달랐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따르면 ‘천자의 죽음은 붕(朋), 제후(왕)는 훙(薨), 대부(大夫)는 졸(卒), 士(사)는 불록(不祿), 서인(庶人)은 사(死)’라고 했다. 또 ‘죽어서 침상에 있는 것은 시(尸), 관(棺)에 있는 것을 구(柩). 새가 죽는 것을 강(降), 짐승이 죽는 것을 지(漬), 구난(寇難·도둑)에 죽는 것을 병(兵)’이라고 했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혼백(魂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성호사설(星湖?說)’에서 말하는 귀신혼백(鬼神魂魄)은 음양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무릇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은 기(氣) 아님이 없다. 그러나 그 융결하여 물(物)이 된 것은 곧 기의 정영(精英)이다. 백이란 음(陰)이니, 음으로써 형(形)을 이루어 형과 질(質)이 이미 생기면 백도 또한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양(陽)이란 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미 백이 있다면 바로 혼(魂)이 있는 것이다. 이는 전(傳)에 이른바, 백의 양을 혼이라 이르는 것이니, 혼과 백이 합하여 이목의 총명과 구비의 호흡과 및 인생의 허다한 정신과 근력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가고 백은 땅으로 간다.’


죽음에 대한 현대적 표현 또한 매우 다양한데 어떤 상황이나 직업, 종교에 따라 표현이 각기 다르다. “사망(死亡), 서거(逝去), 영면(永眠), 요절(夭折), 절명(絶命), 별세(別世), 타계(他界), 하직(下直), 운명(運命), 작고(作故), 열반(涅槃), 순직(殉職), 전사(戰死), 숨을 거뒀다, 돌아가다, 죽다, 영원히 눈을 감았다, 목숨을 거두었다, 세상을 떠났다, 저 세상으로 갔다,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었다, 황천(黃泉)길 떠났다, 하늘나라로 갔다, 밥숟가락 놓았다, 저승 갔다” 는 등 일상 속에서 부르는 비유적인 말을 포함하면 죽음에 대한 이명(異名) 또한 많다. 원래 죽었다는 의미의 ‘사(死)’ 자는 갑골문에  두 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사람이 후골(朽骨) 옆에 꿇어 앉아 머리를 숙이고 애도하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관 속에 시신이 놓여 있는 모습이다. 애도와 관에 놓인 시신을 상형한 것이 오늘날 사(死)라는 글자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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