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일본 아마(海女) 유네스코 등재 다각도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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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시마 G7정상회의서 자국 해녀 홍보 나설 방침
▲ 일본 미에현 바다박물관에 전시된 아마(海女) 모형

지난해 12월 ‘제주해녀 어업’이 국가 중요어업 유산 제1호로 지정됐다. 이로써 제주해녀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탄력을 받게 됐다.

등재 여부는 오는 11월 28일 에티오피아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 제11차 위원회에서 결정된다.

현역 해녀가 2000여 명인 일본은 ‘아마(海女)’를 국가 유산으로 지정하지 않았지만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우선 5월 25~27일 미에현(三重縣) 이세시마에서 열리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자국의 해녀를 널리 알릴 예정이다.

미에현은 일본에서 해녀가 가장 많은 지방이다.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 정상들이 참석하는 G7 회의를 앞두고 미에현 일부 지역에선 아마(海女)를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한 홍보 현수막이 내걸렸다.

아베 신조 총리의 고향 야마구치현은 일본에서 3번째로 해녀가 많은 지방이다.

그의 부인은 3년 전부터 해녀축제에 참석하고 있다. 아베 총리도 유네스코 등재에 힘을 실어 줄 지원군으로 꼽히고 있다.

▲ 6만 점의 넘는 자료를 전시하는 바다박물관 전경.

제주특별자치도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해녀문화를 단독으로 신청한 가운데 일본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일본도 아마(海女)가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것을 바라고 있어서다.

그 일환으로 지구상에 유일하게 있는 제주해녀와 아마(海女)에 대한 교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제주해녀들은 2009년 일본에서 열린 전국 아마(海女)포럼에 첫 참석 후 그동안 여섯 차례 일본을 방문, 우호 교류와 친분을 쌓아왔다.

제주와 일본 해녀가 교류하게 된 것은 명맥이 끊길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1956년 1만7611명이던 일본 해녀는 2010년 2174명으로 8분의 1로 급감했다. 그나마 60대 이상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제주에서도 1950년대 3만명이던 해녀가 지난해 말 4377명으로 급감했다.

양국 해녀에 대한 교류의 산증인은 이시하라 요시카타 바다박물관장이다. 그는 “그동안의 교류와 우호 증진을 볼 때 일본은 양국의 해녀가 공동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에현 도바시에 있는 바다박물관은 해녀의 역사와 문화, 삶을 조명하고 있다.

바다박물관은 해녀는 물론 일본 전통의 고기잡이, 목조선을 비롯해 축제와 환경 등 바다와 인간이 관련된 6만 여 점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이 중 6879점이 국가 지정 문화재(민속자료)로 등록됐다.

해녀는 박물관 B동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곳에선 물질 방법과 잠수에 필요한 도구, 역사 기록, 문화 등을 사진과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다.

바다박물관에는 또 고대의 어업에서 현대의 포경선과 원양어업 등 어업을 총망라하고 있으며, 일본 최초로 심해 탐사에 나선 잠수함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에선 특히, 전통을 이어가며 바다를 지켜온 아마(海女)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는 일본 해녀의 평균 연령이 65세로 후계자들이 거의 나오지 않는 데다 해양 오염으로 고가품인 전복이 급감해 전통 문화가 끊길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제주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신규 해녀는 13명에 불과,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년 후 제주해녀 수는 2000명대로 떨어지면서 명맥이 끊길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드라마 ‘아마짱’ 포스터, 영화 ‘파도소리’ 포스터.

 

아마(海女)는 드라마와 문학 소재로 등장해 일본 열도에서 해녀라는 직업과 삶에 대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2013년 일본 국영방송 NHK에서 방영된 ‘아마짱’은 이와테현의 어촌마을을 배경으로 해녀가 되려고 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뤘다. 156부의 이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 27%를 기록하며 높은 인기를 끌었다.

 

해녀 수업을 받던 주인공 ‘아마노 아키’는 극중에서 노래 실력으로 아이돌 가수로 떠올랐으나 동일본 대지진 이후 귀향해 원래대로 해녀가 됐다. 이로 인해 해녀라는 직업을 일본 전역에 재조명하게 됐다.

 

촬영지인 이와테현 구지시에는 관광객들로 넘쳐났고, 해녀가 되겠다는 20대 여성도 생겨났다. 드라마 아마짱은 동일본 대지진 최대 피해지인 이와테현의 부흥을 이끌어 낸 촉매제가 됐다.

 

이와 함께 해녀를 널리 알린 사람은 일본의 대문호 미시마 유키오(1925~1970)다. 그는 1953년 미에현 도바시 가미시마에 머물며 소설 시오사이(潮騷·파도소리)를 집필했다.

 

이 소설은 홀어머니와 동생을 뒷바라지 하는 18살의 정직한 어부와 부유한 선주의 딸이자 해녀로 살아가는 소녀의 애잔한 순애보를 그렸다.

 

섬 주민들의 질시와 가족의 반대, 목숨 건 조업 등 난관을 극복한 이들은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소설은 1954년 영화로 제작된 후 1985년까지 다섯 번이나 영화로 리메이크 돼 아마들의 삶을 생생히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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