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본 해녀 ‘아마(海女)’의 잠수문화
(9)일본 해녀 ‘아마(海女)’의 잠수문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일본도 해녀 2000여명...제주해녀와 물질 '비슷'
▲ 일본 아마(海女)들이 이소오케(磯桶)라 불리는 부력기구에 의지해 물질에 나서고 있다(일본 바다박물관 제공).

제주해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여부가 오는 11월 28일 에티오피아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 제11차 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유산 등재에 낙관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 역시 자국의 해녀를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본지는 2차례에 걸쳐 양국의 해녀와 일본 현지의 반응을 점검해 본다. 【편집자 주】

일본 도바시에 있는 바다박물관에서 발행한 책자에 따르면 산소 호흡장치 없이 잠수를 해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는 지구상에 제주와 일본 열도 2곳에만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일본은 해녀를 ‘아마(海女)’라 부른다. 일본에는 18개 현에 2000여 명의 해녀가 있다. 이 중 미에현(三重縣) 시마반도에는 761명으로 가장 많다.

일본 학계는 3000년 전 미에현 도바시 시라하마 유적에서 다량의 전복 껍질과 사슴뿔로 만든 빗창(채취 도구)이 출토돼 선사시대부터 해녀가 존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 왕실 법도인 엔기시키(延喜式·927년)에는 ‘시마국에 해산물을 진상하는 가즈키메(潛女)는 30명이다’라고 기록하는 등 8세기에 잠녀(潛女)라는 글자가 문헌에 등장했다.

고대 헤이안(平安)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해녀들은 일본 3대 신궁(神宮)의 하나인 미에현에 있는 이세신궁에 전복 등 해산물을 진상해 왔다.

반면 우리나라 해녀의 존재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왕 13년(503년) 문헌을 통해 처음으로 등장했다. 여러 정사(正史)에서 해녀는 ‘진주 캐는 사람’으로 묘사돼 왔다.

제주와 일본 해녀는 장비와 복장에 큰 차이가 없다. 제주는 테왁, 일본은 둥근 나무통인 이소오케(磯桶)라는 부력 유지 기구를 사용했다.

그런데 물질 방법은 서로 다르다. 제주해녀는 자신의 몸을 밧줄로 묶지 않고 자유롭게 잠수해 10~20m를 들어가는 등 누구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않는다.

반면 일본 해녀는 ‘후나도’(舟人·뱃물질)와 ‘가치도’(徒人·갓물질)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후나도는 부부가 배를 타고 나가서 작업을 하는데 해녀가 해산물을 채취하면 남자는 해녀 허리에 연결된 생명줄을 끌어당긴다. 남자도 해녀문화의 한 부분인 셈이다.

가치도는 해녀 홀로 작업하는 방식으로 부표에 7~8m의 밧줄을 허리에 연결해 부표와 멀리 떨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작업을 한다.

이와 비교해 제주해녀는 철저한 여성 문화로서 물질 기술에 따라 상·중·하군으로 위계질서가 나뉘는 잠녀회가 자리 잡았다. 여성에게는 버거운 노동의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해녀 노래가 발달했다.

제주해녀는 타고난 잠수기술과 작업의 효율성 덕분에 일본과 중국, 러시아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행동반경을 넓혔다. 1930년대 국내·외 출가 해녀는 5000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제주해녀와 일본해녀를 경쟁 대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 물질을 끝낸 아마(海女)들이 아미고야(부뚜막)에서 모닥불을 쬐며 언 몸을 녹이고 있다.

일본 해녀 역시 메이지유신(1868년) 전까지 상반신이 나체인 상태로 물질을 하는 등 생명을 걸고 바다에서 고된 노동을 했다.

이들은 물에 들어가기 전 바닷물을 맛보고 ‘쯔이쯔이’ 라며 주문을 외웠고, ‘세만’이라는 부적을 챙기는 등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소망은 제주해녀와 다를 게 없다.

또 힘든 작업 후에 지치고 언 몸을 모닥불로 덥히는 아미고야(부뚜막)는 제주의 불턱과 유사하다.

일본 해녀들도 남획을 막기 위해 ‘슨보’(전복의 크기를 재는 자)로 10.6㎝ 이하의 전복은 채취하지 않고 있다. 또 미에현 지방은 산란기에 맞춰 9월 15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전복 채취를 금지하고 있다.

해녀문화의 유네스코 등재에 앞서 양국의 공통적인 문제는 고령화와 후계자 감소, 해산물의 심각한 고갈에 있다.

또 양국의 공통적인 걱정은 20년 뒤 해녀 유입이 중단돼 명맥이 끊기는 위기감에 있다.

 

▲ 이시하라 요시카타 바다박물관장

♦이시하라 요시카타 바다박물관장 인터뷰

 

일본 미에현 도바시에 있는 바다박물관에선 일본 해녀 ‘아마’의 역사와 삶을 소개하고 있다.

 

이사하라 요시카타 바다박물관장은 “해녀문화를 유네스코 등재하기에 앞서 후대까지 해녀문화를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시하라 관장은 “일본 해녀의 평균 나이는 65세로 후계자 육성이 가장 필요하다”며 “해녀는 자연과 어울려 생계를 이어갔지만 고령화로 인해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게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그는 “2009년 일본에서 열린 해녀 포럼에 제주해녀들을 초청했고, 그동안 양국의 해녀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다”며 “제주대학교와 미에대학이 자매결연을 체결, 교류와 연구를 통해 해녀문화를 발전, 계승시키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2007년 양국의 해녀를 유네스코에 공동으로 등재하자고 제주도가 먼저 제안했다”며 “일본은 지금도 제주와 일본 해녀가 공동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이시하라 관장은 “일본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해녀를 문화재(유산)로 지정하지 않았다”며 “무엇보다 사라져가는 해녀문화를 먼 후대에도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을 맺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