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600년의 대역사 도민들의 피땀 서려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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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해장성(上)-고려.조선 두 왕조에 걸쳐 완성
▲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 환해장성은 2.12㎞로 현재 남아 있는 장성 중 가장 길며, 온평리 하동 해안에서 신산리 경계까지 이어져 있다.


제주섬과 바다. 그 경계에는 침입과 방어의 역사가 있었다.

섬사람에게 바다는 외부 세력의 침입 통로였다. 보금자리를 빼앗고 재물을 수탈해갔던 외부 세력은 바다를 건너서 왔다.

그래서 선조들은 바다를 빙 둘러가며 돌담성을 쌓았다. 이름하여 환해장성(環海長城)이다.

일명 ‘고장성(古長城)’이라 불렸던 환해장성을 옛 문헌에는 중국의 만리장성에 빗대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제주 해안가를 따라 300리(120㎞)에 걸쳐 돌담성을 쌓았다고 적었다.

제주도 해안선 길이가 254㎞인 만큼 섬 둘레의 절반 정도는 환해장성을 쌓은 셈이다.

환해장성 축조는 아이러니하게도 국토 수호를 위해 대몽 항쟁을 벌인 삼별초를 막기 위해 시작됐다.

1270년(원종 11) 전남 진도 용장성에서 대몽 항쟁을 전개하던 삼별초가 제주에 입성할 것이란 첩보을 입수한 관군(官軍)이 제주에 먼저 들어와 쌓은 게 환해장성이었다.

이원진의 탐라지 등에 따르면 고려 왕은 고여림 장군과 영암부사 김수에게 군사 1000명을 달려 보내 제주에 장성을 구축했다고 기록했다. 또 다른 문헌에는 7200명이 축성에 동원됐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 강창언씨는 환해장성 연구에서 “축성을 위해 하루에 군사 1000명과 도민 6000명 내외가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1273년(원종 14) 제주도 인구가 1만223명인 것을 감안, 당시 성인이라면 매일같이 동원돼 돌을 나르고 담을 쌓았다는 분석이다.

삼별초는 관군을 몰아내고 입성에 성공했다. 제주를 장악한 삼별초 역시 여·몽 연합군을 막기 위해 성을 쌓아 나갔다.

환해장성 축성의 원인이 됐던 삼별초나, 그 삼별초를 막기 위해 파견됐던 관군이나 강제 노역에 동원된 제주사람 입장에서는 똑같은 외부 세력이었다.

해안가 성 쌓기는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제주사람(김석익 1885~1956)이 쓴 첫 제주통사로 평가받는 탐라기년(耽羅紀年)에는 “1845년 영국 선박이 우도에 정박해 섬에 작은 흰 기를 세우고 섬 연안을 1개월 동안 측량하면서 돌을 모아 회(灰·석회가루)를 칠하며 방위를 표시했다. 당시 제주목사 권직은 크게 놀라 마병(馬兵)과 총수(銃手)를 총동원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고, 그해 겨울 도민을 총동원해 환해장성을 수축했다”고 기록했다.
현재 제주도 일원에 남아 있는 환해장성의 자취는 1845년(현종 11)에 수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외적의 침탈을 막기 위해 바닷가를 따라가며 성을 쌓고 보수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무너지면 쌓고, 또 다시 내려앉으면 쌓아올리는 일이 반복됐다.

서양 세력이 몰려오던 개항기에도 환해장성을 수리하며 쌓았다. 장장 600년에 걸쳐 이어진 대역사였다.

길고 길었던 환해장성은 이렇듯 두 왕조에 걸쳐 제주도민의 피땀으로 축성을 했다. 그래서 돌멩이 하나하나에 제주를 지켜달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현재 남아 있는 환해장성의 길이는 140~620m로 비교적 짧지만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 환해장성은 2.12㎞로 가장 길다.

이곳 온평리 해안은 북한 노동당 대외연락부 대남공작원이었던 김동식이 1995년 9월 환해장성을 넘어 침투하기도 했다.

환해장성은 대부분 해안가에 흔한 현무암(일명 몽돌)으로 만들어졌다. 주변에 널린 돌을 엇갈려가며 허튼층 쌓기 방식으로 축조했다.

굴곡진 곳에는 잔돌을 메우고 난 뒤 기단석을 놓고 그 위에 담을 쌓아올렸다.

바닷가는 비탈 지형이어서 해안에 성을 쌓으면 성안이 자연스럽게 성밖보다 높아져 방어에 유리하게 됐다.

해안 쪽에서 보면 바다→갯바위→환해장성→농토·가옥 순서가 된다. 성의 높이는 2~4m 이른다.

돌 하나하나에 제주의 역사가 스며있던 방어유적이 거의 사라진 후인 1998년 제주특별자치도는 환해장성을 제주도기념물 제49호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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