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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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옥자 수필가

한동안 집을 비운 사이 도적님이 들어와서 값나가는 물건들을 깨끗이 털어 갔다.
그녀는 넋이 나가 주저앉았다가 해외 출장 중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울먹이며 상황을 알렸다. 남편은 침착하게 말했다.
“여보, 진정해. 괜찮은 이유가 세 가지나 돼요.
첫째, 당신이 없을 때 도적이 들어, 당신이 무사하다는 점.
둘째, 그 물건들은 애초에 도적의 것인데  당신이 보관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점
셋째,  잃어버린 보석이나 명품들 보다 당신은 나에게 더 빛나는 보석이고 명품이니 걱정할 게 없다는 점”


남편의 말은 그녀를 충분히 안심시켰다. 그 후로는 보석이나 장신구, 값나가는 가재도구에 관심을 잃어, 집이나 몸치장을 하지 않게 되었단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도적님의 물품들을 보관하며 살 필요가 있겠냐?’고 정색을 했다. 아내를 달래던 그 남편의 사랑과 예지는 감동이었고 화사한 얼굴에 단아한 몸매인 그녀의 고백은 삶의 허실을 깨우친 겸허함이 배어났다.


황동규 씨는 「버클리 풍의 사랑노래」란 시에서 남자의 사랑은 거창한 무슨 이벤트가 아니라 설거지나 빨래 널기 같은 사소한 일상으로 완성되는 거라고 잔잔하게 노래하고 있지만, 더러 큰 문제가 터질 때 ‘걱정하지 말라고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다독여 주며 품어 사는 남편의 사랑은 참으로 깊구나 생각했다.


이삼십 년 긴 세월 서울을 오가며  병든 아내를 고쳐보려고 온 마음을 다 바친 남편이 있었다, 팔팔하던 젊은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져버린 기막힌 상황에서 십 수 년을 지극한 보살핌으로 아내 곁을 지켜 온 남편도 있다. 자동차 사고로 중상을 입어 온몸이 마비된 아내를 돌보며 짧지 않은 세월을 온갖 정성 다 쏟아 함께 살아 낸 남편도 있다. 하늘이 낸 烈夫들을  생각하면  그 절절한 사랑에 마음이 찡하다.


그러나 보통의 남편들은 아내들을 속 썩힌다. 내 젊은 날은 오로지 자기 일에 매몰되어 가정사는 뒷전인 내 짝에게 목에 까지 차오른 불만을 터뜨리며 ‘더는 못 산다’고 대들었었다. 그럴 때마다 ‘그래 그러자’고 대꾸한 적이 없는 그의 질긴 끈이 나를 살도록 했다는 걸 깨닫는다. 이 남자를 버리고 헌 여자인 내가 어디 가면 별다른 사람 만날까 슬며시 주저앉곤 했다. 농장 관리사를 증축하며 창고에 보관해둔 세간 사리를 화재로 다 잃어버린 날, 그 엄청난 손실 앞에 침묵으로 사태를 가라앉히던 남편의 태산 같던  모습이 기억 속에 새롭다.


친정어머님은 서너 번이나 새 여자를 데려와서 자신을 쫓아 낸 아버지가 다시 부르면 말없이, 알맹이 몽땅 빼내 가버린 가재도구를  채우며 조용조용히 살다 가셨다. 어머니의 일생을 떠올리면  ‘저 사람이 내 아버지 보다는 백배 낫지’ 속으로 나를 달래곤 한다. 이따금 딸들이 사위와 삐걱 댈 때,  묻는다. ‘그래도 아버지보다는 네 남편이 훨씬 낫지?’ 애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 했던가. 사위가 셋인데 모두 인물도 괜찮고 성품도 온순하고 지적 수준도 있어 어디로 보나 못난 내 자식보다 윗길인데도 이 심상찮은 세상에서, 별  탈 없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게 정말 고맙고 기특하다. 해서 무슨 문제가 있을 때마다 늘 딸들을 타이르며 사위편이 되어 ‘내가 잘 못 키웠네, 용서하시게’  사과하게 된다. 속 좁은 여인네들 인지라 긁어 부스럼을 만들 때가 많은 까닭이다. 가족이 흡족할 만큼  헌신하고 오로지 아내만을 사랑하여 한 생을 살아 낼 남자가 어디  쉬울 것인가. 허나 윗대의 여인들을 떠 올 리면 요즘은 가히 천국이라 할만하다.


남편들이여 우리는 안다.
밖으로 살벌한 경쟁 사회 속에서 상처받고 안으로 마누라들의 잔소리에 치여 사는, 그대들의 수고와 인내와 사랑이 있어 아내들이 활개 치며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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