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장희빈을 몰아냈다 유배 온 김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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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한문본으로 번역하기도

김춘택(1670~1717년)은 조선 숙종 재위 기간에 노론의 중심 세력이자 당대의 문장가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김춘택은 부친 김진구, 아들 덕재를 비롯해 사위 임징하까지 3대가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김춘택의 천거로 궁궐에 들어온 무수리 최씨는 천민 출신이었다. 무수리 최씨는 궁녀에게 세숫물을 날라주는 등 궐에서도 험한 일을 했다.

하지만 무수리 최씨는 숙종의 마음을 사로잡아 후궁이 됐다. 비록 중전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숙빈 최씨는 장희빈의 질투와 혹독한 탄압을 이겨내고 아들을 왕(영조)으로 만들어 냈다.

영조는 평생 미천한 무수리 출생이라는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그런데 야사에는 숙빈 최씨가 낳은 아들이 임금의 씨가 아니라는 소문이 돌았다.

영조의 아버지는 다름 아닌 숙빈 최씨를 궐에 천거한 김춘택이라는 것이었다.

타고난 신체와 수려한 외모를 지닌 김춘택은 장안 여인들의 흠모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보를 빼내기 위해 장희빈의 오빠인 장희재의 아내와 간통했다는 설이 나돌았다.

김춘택은 장희재 아내를 통해 남인이 숙빈 최씨를 암살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공개해 결국 장희빈과 남인들을 파멸에 이르게 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옳지 못했다는 비난에 시달렸고 제주에 귀양을 오게 됐다.

김춘택은 1706년부터 1710년까지 5년간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한편 숙종의 사랑을 독차지해 인현왕후를 몰아내고 조선의 국모가 된 장희빈의 몰락은 한글 소설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에서 시작됐다.

백성들에게 널리 읽힌 이 책은 아름답고 정숙한 사씨 부인이 남편의 첩인 교씨에 의해 쫓겨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을 접한 백성들은 등장인물이 숙종, 인현왕후, 장희빈을 빗댄 것이라고 여겼다. 장희빈을 왕비로 맞이한 숙종의 마음을 돌리려는 의도로 지은 이야기라는 설은 사실상 정설이 됐다.

김만중의 종손자(형의 손자)인 김춘택은 고관대작들도 사씨남정기를 보도록 한문본으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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