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까지 흰 칠을 한 얼굴에서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다. 굽은 팔다리와 뒤틀린 몸짓으로 느리고 무겁게 한 발 한 발 내 딪는다.

 

무용하면 으레 떠오르는 아름답고 우아한 동작은 볼 수 없다. 꾸밈도 과장도 사라진 본능적인 몸 짓은 회화적이고 괴기해보이기까지 한다. 매 순간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라무(31·본명 홍기향)는 실험예술가다. 그는 새로운 장르의 무용인 ‘부토’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모호한 세계를 표현하며 평화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부토는 일본 전통예술인 가부키와 서구 현대 무용이 만나 탄생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1950년대 일본에서 시작된 부토는 당시 세계문화의 흐름이었던 표현주의와 모더니즘, 그리고 일본 사회에 팽배했던 허무주의를 담아냈다. 춤은 임종을 맞이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몰아쉬는 숨 혹은 일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움직임을 묘사한다.

 

부토 무용수들은 늘 얼굴에 흰 분필을 하는데 인간 색깔을 없애고 내면 세계를 표현하려는 의지를 상징한다.

 

장의사를 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적부터 늘 삶과 죽음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있던 그는 2008년 서울 홍대거리에서 활동할 당시 룸메이트로 우연히 일본인 후지에다 무시마루상을 만나 ‘부토’를 알게 됐고 순식간에 부토에 매료됐다. 후지에다상은 그의 스승이 됐다.

 

그 후로 라무는 부토로 상처받은 자연과 사람들에게 치유와 휴식의 몸짓을 선보이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서울 한강시원제에서 ‘4대강 녹 방지 기원제’를 펼쳤고, 한 달간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한 연극 ‘세월호-공중의 방’에 출현하기도 했다. 또 일본에서 한·일 공동 아티스트들과 위안부를 기리는 퍼포먼스에도 참여하는 등 국내·외를 종횡무진하며 평화의 발자국을 찍고 있다. 그는 “사회적·정치적 문제들을 그 어떤 것 보다 제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문화와 예술”이라며 “치유는 고난을 겪고 이겨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공감이자 나눔이기 때문에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 속에서 탄생한 부토가 치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요즘 가장 치유하고 싶은 곳은 다름아닌 ‘제주’다.

 

경기도 안성이 고향인 라무는 5년 전 제주 자연이 주는 편안한 숨결이 좋아 한림읍 옹포리에 터전을 잡고 ‘제주 살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제주가 어느 곳보다도 치유가 필요한 섬이라고 말한다.

 

“제주는 아름답고 사람과 자연에게 쉼이 될 수 있는 곳인데 자꾸 개발하는 탓에 점점 제주의 참맛을 잃고 있다”며 “사람들은 한 번에 판단하려 하지 말고 자연과 어떻게 소통하고 화합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결국 모두가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년 강정교 멧부리 바위에서 ‘부토 페스티벌’을 열고 장르를 불문한 예술인들과 평화의 바람을 모아 공연한다. 그리고 철조망으로 더 이상 기지개 펼 수 없는 구럼비 바위와 쉴 곳을 잃은 파도와 바람을 위로하고 아픔을 함께 나눈다.

 

그는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은 어느 누군가는 아파하고 눈물 흘리고 있다”며 “그 때 내가 예술가라서 할 수 있는 딱 한가지는 그들의 아픔을 감싸안고 함께 아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예술의 지향점이자 꿈은 사랑과 평화”라며 “따뜻하고 착한 예술로 하늘 아래 모든 것들과 호흡하며 계속해서 춤추고 싶다”고 전했다.

 

백나용 기자 nayong@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