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선열의 숭고한 정신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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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제주일보 70년 ‘제주의 애국선열을 만난다’(下)]

▲김순희 지사(1908년~1933년)···독서회 결성해 격문운동 전개

김순희 지사는 1929년 비밀결사 조직인 조선학생전위동맹의 중앙집행위원 겸 선전부장으로 선임된 이후 세포조직인 독서회를 각급 학교에 결성토록 하고 사회주의사상 전파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교육정책을 반대하는 격문운동을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1931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가혹한 고문으로 인해 옥중에서 사망했다.

 

▲김시용 지사(1906년~1945년)···농민조합운동 추모비 건립 운동 전개

김시용 지사는 1928년부터 1931년까지 일본과 부산에서 항일의식을 전파하다가 옥고를 치렀고, 이후 고향인 제주 조천으로 귀향해 생활하다가 1937년 8월 제주도 농민조합운동 추모 비문 건립에 앞장섰다.
이어 김 지사는 1938년 10월 중일전쟁의 실상을 알리는 등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앞장서다가 1942년 8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45년 7월 23일 순국했다.

 

▲김운배 지사(1899년~1934년)···조천 만세운동 주도

김운배 지사는 1919년 3·1독립만세 운동에 호응해 제주도 조천리에서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나흘간 주민 수 백 명이 참가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1920년 2월경 중국 상해로 망명했다.
이후 김 지사는 1920년 12월 상순 부산으로 입국해 군자금을 조달하려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이듬해 6월과 8월 부산지방법원과 대구복심법원에서 각각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김재동 지사(1872년~1932년)···독립운동가 추모비 건립 운동 전개

김재동 지사는 1931년 1월 고향인 북제주군 함덕리에서 향리 출신 독립운동가인 한영섭 지사의 장례를 치르면서 조기 40여 개를 만들어 사용하고, 혁명가를 부르는 한편 추모비를 만들어 함덕리 공동 샘터 부근에 세웠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어 김 지사는 1931년 8월 5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재판 대기 중 옥사에서 순국했다.

 

▲문덕홍 지사(1902년~1949년)···임시정부 비밀공작원으로 활약

문덕홍 지사는 일본 배의 선원으로 근무하다가 중국 상해에서 탈출해 1941년 초에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했으며 1942년 10월에는 임시정부 경비대원에 임명돼 1945년 1월까지 활동했다.
이후 문 지사는 1943년 10월 2일 임시의정원 전라도 대표의원과 1944년 임시정부 재무부 총무과원과 서무국원으로 근무하다가 1945년 봄에 국내 비밀공작원으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가 광복으로 석방됐다.

 

▲박주석 지사(1864년~1921년)···무오법정사 항일운동 참가

박주석 지사는 1918년 10월 제주도 남제주군 좌면 법정사에서 일어난 항일 무력시위에서 시위군을 이끌고 중문주재소를 습격해 일본 경찰 3명을 붙잡고, 무고하게 감금돼 있던 13명의 구금자를 풀어줬다.
하지만 강 지사는 이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가 1921년 7월 24일 모진 고문으로 인해 옥중 순국했다.

 

▲부생종 지사(1909년~1936년)···향동회 등 항일운동 단체 조직

부생종 지사는 1931년 1월 제주도에서 죽은 애국자를 애도하는 기념비를 건립했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징역 1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이후 부 지사는 1933년 2월 김일준 지사와 함께 향동회와 민풍진흥회, 농민조합, 독서회 등을 조직했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1936년 6월 29일 목포형무소에서 옥중 순국했다.

 

▲신재홍 지사(1900년~?)···제주 야체이카 운동 전개

신재홍 지사는 1930년 고향인 제주에서 혁우동맹을, 1931년 제주도 야체이카를 각각 조직해 항일운동을 한 데 이어 같은 해 7월에는 비밀결사 조직인 ‘적’을 조직해 책임자가 됐다.
이어 김 지사는 1932년 1월 제주도 구좌지역 해녀투쟁을 배후에서 지휘·조정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조대수 지사(1906년~1948년)···일본상품 불매운동 전개

조대수 지사는 1927년 4월 9일 고병희 등과 함께 제주면 삼도리에서 회합해 무정부주의 항일독립운동 노선의 독서회를 조직한 데 이어 같은 10월에는 소비조합을 조직해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했다.
이에 조 지사는 1930년 6월 일본 경찰에 붙잡힌 뒤 다음해 7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이 확정돼 옥고를 치렀다.

 

▲조봉호 지사(1884년~1920년)···독립회생회 제주도 조직 결성

조봉호 지사는 1919년 5월 만세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독립회생회 제주도 지방조직을 결성한 뒤 군자금 수합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조 지사는 1919년 7월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같은 해 11월 1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가혹한 고문으로 옥중 순국했다.

 

▲홍원표 지사(1909년~1939년)···日 오사카서 항일투쟁 전개

홍원표 지사는 1929년 6월 광주농업학교에 재학하면서 독서회를 조직해 조국 독립과 사회과학 연구를 하던 중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 이후 경찰에 적발돼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홍 지사는 일본으로 건너가 1934년 11월 오사카를 중심으로 관서지방협의회 재건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항일투쟁을 하던 중 일본 경찰에 붙잡혀 다시 2년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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