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馬)을 유독 좋아하는 젊은 미술인이 있었다. 그는 홍익대 미대를 나와 동 대학원을 다닐 때 석사 논문으로 ‘말의 상징성을 표현한 도자조형 연구-제주 조랑말을 중심으로’를 썼다.

 

2004년 그는 제주에 눌러앉았다. 조랑말을 쫓아서다. 작가는 제주 산야를 누비며 조랑말을 유심히 관찰했다. 조랑말의 모습은 흙으로 빚어졌고 전시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공개됐다.

 

흙판을 자르고 붙여 만든 조랑말은 지극히 사실적으로 표현되거나 때로는 기하학적인 변주를 통해 다채로운 조형미가 가미되면서 보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흙과 돌을 결합시켜 물성을 뛰어넘는 질감과 미감이 구현되고 제주의 거칠고 투박한 특질도 투영됐다.

 

말의 얼굴이 다채로운 모양과 형태로 조형돼 감상과 음미의 스펙트럼을 한층 확장했고 말의 온순함이나 성적 이미지 등이 강조되고 과장돼 표현될 땐 신선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

 

그가 빚은 조랑말의 갈기와 엉덩이에서는 제주 바람의 기운이나 오름의 곡선미가 느껴졌다.

 

유종욱(46)은 ‘말(馬)의 작가’다. 전북 전주 출신인 그는 제주 생활 내내 오로지 말을 응시하며 작품으로 빚어냈다. 그동안 탄생한 말 작품이 대략 6000여 점에 달하고 개인전 23회를 비롯해 단체전과 그룹전 등을 포함하면 전시회 횟수만도 300여 회를 훌쩍 넘길 정도다.

 

작업의 기법은 도예에서 출발해 페이퍼 콜라주를 거쳐 평면까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제주에 정착한 후 제주시 아라동에서 제주도자조형연구소를 운영하던 그는 2010년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에 작업장 겸 아카이브 공간인 제주토마미술연구소를 마련했다. ‘토마’는 조랑말의 옛 이름이자 작품 중 비중이 압도적인 ‘흙말(土馬)’이란 뜻까지 내포한 중의적 의미다.

 

최근 제주토마미술연구소에서 만난 유 작가는 “말의 눈동자를 가만히 쳐다보면 마치 거울처럼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며 “말의 눈망울은 우주를 품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조랑말에서 제주인의 근성과 한국인의 유전자가 읽힌다고 강조했다. “제주에 와서 얼마 안 될 때였죠. 함박눈이 잔뜩 쏟아진 겨울 날 애월읍 중산간 들판에 방목돼 있던 조랑말들을 봤어요. 하얀 눈을 온몸으로 맞은 채 묵묵히 서 있는 말들을 가까이 다가가서 봤는데 온갖 고난을 헤쳐 온 제주인의 성정과 한국인 특유의 한의 정서가 느껴지더라고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중절모를 눌러쓴 그는 말 특유의 신성성과 친근감을 작품에 녹여내고 있다고 밝혔다.

 

“말은 역사적으로 신성시됐었어요. 고관대작의 부장품으로 묻히고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매개체였어요. 말의 신성한 모습이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믿어요. 또 하나는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동물이란 점이에요. 말을 의인화해 울고 웃는 감정이 풍부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죠. 작품을 보는 사람도 똑같이 웃고 울게 되죠.”

 

유 작가는 ‘말의 고장’ 제주가 최근 각종 말산업을 추진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승마 활성화와 마로(馬路) 도보길 조성 등을 통해 도민과 관광객이 말과 어울려 여유와 휴식을 즐기는 모습을 기대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애정 어린 충고도 잊지 않았다.

 

“제주 역사의 절반은 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말은 관광도시 제주를 먹여 살릴 자원으로써 충분한 가치와 잠재력이 있죠. 다만 전제 조건은 말 테마 관광의 바탕에는 반드시 제주문화가 깃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경제논리에만 함몰돼선 결코 성공할 수 없죠.”

 

‘말의 작가’의 시선은 이제 해외를 향하고 있다. 내년에 작가의 영국 전시회 일정이 잡혀있고 두바이 전시도 추진되고 있다.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을 무대로 레지던시 작가로도 참여할 예정이다.

 

그의 예술적인 행보를 따라 조랑말이 세계를 향해 힘차게 내달리고 있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