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출신 28세 여성이 제주에서 예술 인생을 활짝 꽃피우며 눈길을 끌고 있다.

 

10대 초반부터 미국과 유럽, 일본, 홍콩 등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 다닌 이 여성은 대학생 시절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고 졸업 후에는 제주에 눌러앉았다. 그녀는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창작 활동을 펼치면서 재능 기부에도 기꺼이 참여하고 있다.

 

주인공은 아그네 라티니테(28·Agne Latinyte). 그녀는 빌니우스미술대학에서 일러스트(리투아니아에선 동판화 지칭)를 전공한 후 빌니우스종합대학에 들어가 동아시아문화를 공부했다.

 

당시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던 중 아그네는 유독 한국에 꽂혔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몰랐었는데 한 교수가 일본 문화가 한국에서 건너간 것이란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겼다”는 것이 그녀가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다.

 

 

   

빌니우스종합대학을 다니던 중 2학년 과정을 마친 2012년 말 아그네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찾아 경희대와 성균관대에서 차례로 1년씩 공부해 3·4학년을 마치고 졸업했다. 제주와의 인연은 서울에서 사귄 프랑스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된 제주프랑스영화제 방문에서 비롯됐다.

 

그때부터 그녀는 제주를 줄기차게 드나들었으니 대학 생활 동안 매달 한 차례 이상 꼬박 제주를 향하는 아그네를 향해 친구들이 짐짓 건네는 인사말이 “또 제주 섬에 가?”일 정도였다.

 

결국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지난해 제주시 원도심에 보금자리를 틀고 정착했다. “제주는 자연이 아름답고 날씨도 좋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따뜻하고 인정이 많아요.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고향의 이미지 그대로예요. 제주는 정말 저랑 죽이 짝짝 맞는 제2의 고향이랍니다.”

 

아그네는 제주에서 예술 활동을 펼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일러스트와 판화를 작업하고 갤러리카페에서 음악공연과 어우러진 라이브 페인팅을 하는 것은 일상이다. 각종 축제·이벤트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거나 벽화를 그리는 것도 일과 중 하나다.

 

영자신문 ‘제주위클리’에 돌하르방 캐릭터가 주인공인 카툰 ‘하루방의 탐라 땅’을 연재하는가 하면 이중섭예술시장과 아라올레 지꺼진장 등 플리마켓을 돌며 작품 팔고 도민들과 소통하느라 하루해가 짧을 지경이다.

 

재능 기부에도 적극적이다. 제주국제관악제와 제주프랑스영화제 포스터에 그림 그리고 표선해수욕장에 대한 정보를 담은 만화 안내판을 제작한 것도 그녀다. 전시회도 꾸준히 연다.

 

2013년 ‘발트해 신(神)’을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연 후 동물과 타로카드 등을 다룬 전시회를 두 차례 가졌고 단체전에도 수차례 참여했다. 그녀는 제주를 그리기 위해 한국화도 공부했다.

 

요즘 아그네가 응시하는 것은 단연 제주 신화와 역사, 문화다. 그는 “제주 신화는 아주 재밌다”며 “예술로 신화를 살려내는 것이 목표”라고 역설했다.

 

“사실 세계 신화들은 공통점이 많아요. 이름까지 같은 신도 있죠. 하지만 국가·지역별 특색은 분명해요. 그것은 지역과 나라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잉태해 사람들에게 깃든 정신의 차이와도 상통하는 대목입니다.”

 

특히 신화의 부활이야말로 사람들의 정신을 살찌우고 삶을 윤택하게 한다고 역설하는 그녀다.

 

“역사·신화 테마 공원이나 박물관이 있다고 예술의 섬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예술이 살아 숨 쉬어야 합니다. 신화를 다룬 예술작품이 끊임없이 탄생해 소비되고 향유되는 문화 생태계가 확립돼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때 제주는 진정한 세계 예술의 섬이 될 것입니다.”

 

아그네의 머릿속에는 이미 예술의 섬을 조성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가 기획돼 있고 수많은 예술 실험 계획도 짜여 있다. 아직은 발설할 단계가 아니라며 일부만 공개해도 꽤 많다.

 

판화와 일러스트로 제주신화를 형상화하고, 평소 좋아하는 동물을 그리되 스토리를 가미한 후 나중에 책으로 엮고, 신화와 동물 주제 애니메이션도 제작하고…. 여러 작가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작업하는 ‘오픈 스튜디오’ 운영과 제주 바다 속 전시회도 실행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제주를 향한 애정은 최근 자연 파괴와 개발 방향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으로 전이됐다.

 

“제주 개발이 하와이처럼 관광객이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는 쪽으로 가선 안 됩니다. 요즘 제주 오름과 해안가 등이 무차별적으로 훼손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파요. 신화를 앞세워 예술의 섬으로 조성하는 것, 바로 거기에 제주의 미래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