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통일돼 자랑스런 조국으로 우뚝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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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단장, 비닐 제조공장서 일하다 반세기 동안 민단에 헌신
자비 들여가며 교포들의 정체성 확립.권익 증진에 앞장서
"제주, 유능한 인재 유입으로 미래지향적 발전 이루길"
   

▲일본으로의 밀항…아버지와의 만남

 

김수길 대한민국 민단 동경본부 단장(72)은 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고, 광복이 되자 부모님과 함께 고향인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로 돌아갔다.

 

이후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했고, 어머니마저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53년에 돌아가시자 김 단장은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한 아버지의 권유로 김 단장은 16세이던 1958년 일본으로 가는 밀항선을 타게 됐다.

 

일본에 온 김 단장은 아버지와 함께 오사카에서 다시 도쿄로 이사를 오게 됐다.

 

이후 김 단장은 대한민국 민단이 운영하는 한국학교에서 일본말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우면서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

 

▲현실에 부딪혀 가업을 물려받다

 

김 단장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양복점 등지에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김 단장은 한국학교에서 고교 과정을 마쳤고, 결국 담임교사의 도움으로 명치대학에 입학원서를 넣을 수 있었다.

 

당시 김 단장은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합격한 재일 한국인 학생들에게 지원되는 조선장학회의 장학금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합격자 발표 하루 전날 김 단장이 꿈이 날아가 버렸다.

 

명치대학 측이 원칙적으로 입학원서를 받아주면 안 되는 데 실수로 이를 받아줬다는 연락을 해 온 것이었다. 영주권이 없는 제주 출신 한국인의 입학을 허가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결국 김 단장은 명치대학 대신에 동양대학에 입학하게 됐다.

 

동양대학을 졸업한 직후 김 단장은 평소 아르바이트를 하던 일본 포목점에서 취업을 권유했지만 이를 따를 수 없었다.

 

영주권이 없는 데다 일본인과 한국인을 차별하는 일본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일반 기업에 취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김 단장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비닐 제조공장 일을 돕기로 했고, 이를 통해 삼대에 걸친 가계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김수길 민단 도쿄본부 단장이 도쿄본부 앞 거리에 세워져 있는 충혼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국을 위한 삶’ 민단에 투신하다

 

김 단장은 비닐 제조공장에서 일하면서 약간의 돈을 만질 수 있게 된 것은 1967년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25세가 된 김 단장에게 대한민국 민단 동경본부 산하 아라카와 지부 단장이 찾아와 ‘자네가 청년회를 조직해 민단에 힘을 보태주게’라는 부탁을 받게 됐다.

 

이 부탁은 이후 김 단장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조국을 위해 헌신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었다.

 

당시 김 단장이 살던 도쿄 아라카와라는 지역은 1만2000여 명의 한국인이 살았고, 이 가운데 70%가량은 북한을 옹호하는 조총련계였다.

 

더구나 이 지역에는 조총련학교 중급 1호 학교가 있을 정도로 조총련의 아성이 높은 지역이었다.

 

결국 김 단장은 조총련계가 주류인 지역에서 외로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투쟁을 해야 했다.

 

당시 김 단장은 민단 동경본부 아라카와 지부 청년회장을 맡아 밤새 ‘북송반대’ 등의 내용을 담은 대자보를 만들어 재일교포 사회에 전달하는데 열과 성의를 다했다.

 

김 단장은 “당시 10만명에 달하는 재일교포가 북송됐는데 이것이 밑거름이 돼 재일교포사회는 조총련의 공세적 위치가 형성됐고, 민단은 수세에 급급했다. 그래서 더욱더 북송에 반대하는 데 주력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대한민국 민단 활동을 시작한 김 단장은 아라카와 지부 청년회장과 부단장, 단장을 거쳐 이어 민단 도쿄본부 부단장과 의장에 이어 현재 단장을 역임하고 있다.

 

김 단장은 인생의 3분의 2 이상인 무려 48년간 대한민국 민단에서 자비를 들여가며 다양한 활약을 펼치는 것이다.

 

▲재일교포 사회의 현실을 말하다

 

일본에는 3·8선이 없지만 재일교포 사회는 반으로 갈려 있다.

 

재일교포들은 같은 민족이어서 평상시에는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고 저녁에 같이 만나서 식사도 하지만 이념적인 부분에서는 민단계와 조총련계로 나뉘어 갈라져 버린다.

 

같이 인사도 하고 친족 모임도 하지만 모였다가 이념적인 이야기만 나오면 결국 서로 싸움을 하게 되는 게 재일교포 사회의 현실이라는 게 김 단장의 설명이다.

 

김 단장은 민단이 주축이 돼 하루빨리 이 같은 이념적인 문제가 해결돼 서로 화합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염원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김 단장은 재일교포 2, 3세와 새로 일본으로 넘어온 재일교포들이 민단 활동에 참여해 힘을 보태주기를 희망했다.

 

민단을 만들고 대한민국 국민의 권익 증진을 위해 평생을 노력하신 재일교포 1세들이 하나둘씩 돌아가시고 있는 데다 재일교포 2, 3세들은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라다 보니 애국심과 애향심이 1세에 비해 떨어지고, 심지어 국가에 대한 정체성에 의문까지 제기하고 있는 게 재일교포 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김 단장은 “민단에 합류하는 사람들이 적어지는 게 가장 힘든 현실이다. 재일교포 1세들이 돌아가시고 2, 3, 4세가 주요 활동을 해야 하는데 정작 자신의 고국과 고향에 대한 정체성이 점차 없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민단은 현재 최우선의 목표를 차세대 육성으로 설정해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발전과 조국통일을 염원하다

 

김 단장은 열다섯 살 때까지 고향에서 지냈기 때문에 제주에 현재까지 서로 연락하면서 왕래하는 친한 친구 두 명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김 단장은 민단 활동은 물론 개인적으로 1년에 2회 이상 고향 제주를 방문한다.

 

이처럼 고향을 자주 방문하는 김 단장은 제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외지인들에 대한 배타적인 사고를 벌이고, 적극적으로 유능한 외지 출신 인재의 유입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단장은 “항상 고향에만 있는 분들보다 제주도를 더욱 객관적으로 보고 이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외지 출신의 유능한 인재가 될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배타적인 사고를 벌이고, 새로 제주로 유입되는 인구들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제주 발전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방법들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김 단장은 조속한 조국 통일에 대한 염원도 피력했다.

 

김 단장은 “현재 우리 민족이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 있다 보니 재일교포들도 일본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것이다. 만약 남북이 통일되면 인구도 7000만명이 넘을 것이고, 이에 따른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발전상을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며 “조속한 남북통일을 통해 재일교포도 차별받지 않고, 항상 자랑스러워하는 조국으로 조속히 발전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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