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박하재홍은 2010년 겨울 제주에 정착해 다양한 연령층의 힙합마니아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펼치며 오직 ‘음악’으로 하나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사진은 ‘블루힐’에서의 공연 모습.(사진 오른쪽)

밋밋한 섬에 라임(rhyme, 일정한 자리에 같은 운을 규칙적으로 다는 일)이 하나, 둘 덧붙여지고 플로(flow, 힙합에서 랩의 흐름)가 가미된다.


그러자 섬은 조금씩 리듬을 타기 시작했고, 그 리듬은 섬 주변으로 모여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힐링의 기운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변화의 핵에는 래퍼 박하재홍(37)이 있다.


일찍이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자신의 존재 가치만으로 변화·개선에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끝에 2002년, 거리공연을 선택했다.


600회가 넘도록 전국의 거리를 누비며 사회 속에 내재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변화를 바라는 마음을 랩에 담아 대중들과 소통했고, 그러자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하나, 둘 늘어갔다.


그러던 그가 2010년의 끝자락, 인생이라는 항로의 키를 돌렸다. 바로 이곳 제주로 말이다.


지인을 좇아 목공일을 배우기 위해 처음 제주에 왔다는 그. 그는 “돈을 버는 ‘직업’과 문화적 또는 예술적 활동과는 별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늘 다른 일을 병행해 왔다”며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싶었다”고 제주 정착의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그는 래퍼다. 노래하는 이들에게 제주는 성공의 맥이 막힌 불모지나 다름없는데 그는 왜 이 안에서 랩의 명맥을 이어가기로 결정했을까.


그는 “한국에서 ‘문화의 중심=홍대’라는 공식을 부인할 사람은 없지만 홍대의 힙합 시장은 이미 너무 거대해졌을 뿐만 아니라 즐기는 연령층도 한정돼 있다”며 “반면 제주지역에서는 10대~30대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편안함과 여유로움 속에서 ‘즐기는 음악’을 좇고 있더라. 그 모습에서 제주 힙합의 무한한 가능성을 읽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부터 매달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제주힙합포럼’ 등을 통해 지속적인 만남의 시간을 마련,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자신들만의 색깔이 밴 작품(?)들을 선보이며 단지 ‘음악’으로 하나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가 제주에 남기로 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주에는 아쉬운 게 하나 있다고 한다. 바로 프로듀서의 부재이다.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이러한 특기·소질을 상품으로 만들어 내놓아 줄 기획자까지 더해진다면 제주의 문화적 가치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일침했다.


새로운 영역의 개척에도 거침없는 그다. 그는 이곳에서 평소 관심이 많던 인문학과 힙합·랩을 버무려 강의라는 방식을 통해 제주인들과 소통하고 있다. ‘랩으로 인문학 하기’ 강의가 바로 그것이다.


“대중음악을 빼 놓고 사람들의 질서를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그는 “그 시대 음악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면 문화의 이해도 빠를 것이라는 생각을 강의와 접목시켰다”며 시도 배경을 풀어놨다.


음악을 강의라는 매개체로 공유하며 그가 좋아하는 힙합을, 랩을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서서히 녹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음악 외에 환경·동물 보호에도 관심이 남다르다. 전 세계 환경·동물 보호 모임인 ‘뿌리와 새싹’ 한국지부가 설립될 수 있도록 나섰고, 현재 제주에서도 이와 연계해 2곳의 지역아동센터 아동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과 인공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재활용 카페를 방문하기도 하고, 벼룩시장에 참여해 수익금을 유기견 보호센터에 기부하기도 하며 관찰력·경험을 몸으로 느끼게 한다”는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감지하며 아이들 스스로도 환경지킴이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다. 5년여의 ‘제주살이’에서 과연 자신이 얼마나 성숙해졌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작업해 놓은 작품들을 곱게 포장해 세상에 내놓으면서 말이다.


자신은 단지 ‘정보수집가’일 뿐이라고 말하는 래퍼, 어른이 변하지 않으면 청소년들의 꿈 역시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 강사, 그간 출간한 책들은 단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들을 체계화 한 결과물에 불과하다고 겸손을 떠는 작가, 박하재홍. 글자마다 부여된 소리의 강약에 따라 리듬을 타는 그의 몸짓에서 문화적 성장을 꿈꾸는 제주가 꿈틀거리고 있음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