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가난한 공장 아들서 교육 사업가로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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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찬 아까몽까이 일본어학교 이사장
재일 한국인들이 관심 안 뒀던 새 사업 분야서 성공
   
박시찬 아까몽까이 일본어학교 이사장이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가난한 플라스틱 가공공장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 재일한국인에게는 불모지와도 같았던 교육 분야 사업에 뛰어들어 도쿄에서 손꼽히는 일본어학교로 키워냈다.’

 

재일제주인 2세 출신으로 도쿄 내 굴지의 일본어학교 경영가로 성장한 박시찬 아까몽까이 일본어학교 이사장(66)의 인생 스토리는 각종 차별과 역경을 이겨내면서 살아온 재일 제주인들의 삶과 궤적을 같이한다.

 

명함에 적혀 있는 아까몽까이 일본어학교 이사장이라는 직함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일본 도쿄 내 최고의 대학을 바라보면서 최고의 교육 사업가를 꿈꾸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학교 이름인 아까몽까이에서 아까몽은 바로 일본 최고의 대학인 도쿄대의 빨간색 정문을 일컫는 것이며 까이는 대학을 뜻한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만 찾아오는 플라스틱 가공공장을 벗어나 30대의 젊은 패기를 갖고 재일 한국인들이 지금까지 뛰어들지 않았던 새로운 사업 영역 개척에 나섰던 것이 성공한 교육가이자 사업가로서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해외 유학생에 대한 정책이 사실상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는 한국과 일본을 부지런하게 뛰어다녀야만 했다.

 

그의 노력을 전해졌을까 일본 정부가 국위를 높이기 위해 유학생 10만명과 30만명 유치 계획을 발표하면서 아까몽까이 일본어학교는 전환점을 맞았다.

 

일본의 유학생 유치 계획에 따라 자연스럽게 한국인 유학생들의 비자 문제가 해결되면서 학원을 찾는 학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유학생들의 원하는 분야에 맞는 맞춤형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자격증 소지자들만 교수진으로 채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 각국으로 유명세가 전파됐다.

 

2009년 리만 쇼크와 2011년 일본 대지진 등으로 인해 일부 국가의 유학생 유치에 어려움도 발생했지만 베트남과 몽골, 유럽, 미주 등 세계 각국에서 유학생이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난관을 극복할 수도 있었다.

 

지금은 한 해 세계 40여 개국에서 1600여 명의 유학생이 찾고 있고 교사 120여 명과 행정 담당 직원 160여 명을 이끌면서 일본의 심장인 도쿄에서 제주인뿐 아니라 한국인의 긍지를 높여주는 모범적인 교육 사업가 상을 심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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