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제주에 정착한 서양화가 김유지는 올해 3월 제주시 한림읍 귀덕1리에 그녀의 화실 겸 전시장인 ‘유지차여러가지공작소’의 문을 열었다. 개관 후 ‘누추하지만 들어오세요’를 주제로 첫 기획전 연 데 이어 이달부터 7월까지 ‘네팔을 위한 기도’를 주제로 사진전을 열고 있다.

제주시 한림읍 귀덕1리. 일명 거북등대로 유명한 이곳 해안을 낀 일주도로변에 붉은 색의 작달막한 2층 건물 한 채가 서있다. 건물 벽면에는 ‘유지차여러가지공작소’란 글자가 삐뚤빼뚤 손글씨로 적혀 있다. 무심코 지나가다가는 보이지 않을 단출한 건물과 간판이다.

 

이 공간의 주인장은 서울 출신 서양화가 김유지(29)다. 김 작가는 서울미술고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숭의여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영화광고디자인회사에서도 일했던 그녀의 주업은 서양화이고 사진과 디자인, 공예 등 다양한 ‘공작’에도 능하다.

 

작가는 차(茶)를 즐긴다. 그녀의 화실 겸 전시장인 ‘유지차여러가지공작소’에서 ‘유지’는 자신의 이름이자 ‘댕유지차’를 마시면서 배운 유자의 제주방언인 ‘유지’란 뜻이 내포돼 있다.

 

김 작가는 지난해 8월 제주에 정착했고 올해 3월 ‘유지차여러가지공작소’의 문을 열었다. 공작소 건물 밖에 티베트 깃발이 달린 목마가 나와 있으면 ‘영업 중’이라는 신호다.

 

이에 앞서 김 작가는 6년 전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를 찾아 약 1년간 지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서울 생활에선 결코 느낄 수 없었던 계절 변화와 풀 향기, 바다 냄새 등을 오감으로 만끽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자연이 주는 감동은 사람에게서 받는 것과는 또 다른 포근함을 선사했다. 한마디로 치유의 경험이었다”고 반추했다.

 

힐링 체험은 작품에 투영됐다. 제주에서 얻은 영감이 각종 ‘공작’을 통해 오롯이 거듭났다.

 

2013년 김 작가는 다시 제주를 찾았다. 그해 10월부터 3개월간 제주를 그린 작품을 모아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고래가 될’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레이지박스’, 제주시 일도동 ‘왓집’ 등 갤러리 카페 3곳을 돌며 ‘맨도롱 유지차’란 주제 아래 릴레이 전시를 펼쳤다.

 

전시는 말 그대로 따뜻한 유자차 한 잔 마시는 느낌을 관람객과 공유한다는 취지로 마련한 것으로, 김 작가는 전시회 수익금의 일부를 제주 독립영화 후원에 활용했다.

 

김 작가는 올해 ‘유지차여러가지공작소’를 개관한 후 ‘누추하지만 들어오세요’를 주제로 첫 기획전을 연 데 이어 이달부터 7월까지 ‘네팔을 위한 기도’를 주제로 사진전을 열고 있다. 전시작은 그녀가 올해 1~2월에 네팔과 인도를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 40여 점이다.

 

네팔 포카라에 머물 당시 김 작가는 지진을 겪었다. “네팔 여행 도중 집이 흔들릴 정도의 지진이 났지만 현지에선 그런 일이 종종 있다기에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귀국 후 지진 참사를 알고 나니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계속 마음이 쓰였죠.”

 

이번 전시에 네팔 참사 구호란 목적이 걸린 이유다. 김 작가는 전시 사진과 엽서 등을 판매한 수익금의 일부를 네팔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에 기탁할 예정이다.

 

그런데 김 작가는 왜 하필 제주에 정착했을까. “여행 올 때마다 ‘너무 좋다’고 뇌리에 각인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제주는 풍경 그 자체만으로도 여유와 휴식을 주기 때문”이라고 운을 뗀 그녀는 “예술을 통해 제주를 기록하고 싶다”고 제주행의 지향점을 설명했다.

 

여기서 제주는 천혜의 자연에 방점이 찍히지 않았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제주다.

 

“물론 제주 바다와 오름 모두 예쁘죠. 하지만 제주의 또 다른 주인공인 사람에게도 시선을 두고 싶어요. 가장 먼저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제주에서 곧 사라질지 모르는 것들을 기록할 거예요. 예컨대 시골에서 할머니가 운영하는 이름 없는 구멍가게 같은 것들이죠.”

 

김 작가는 ‘사라질 것’에 대한 프로젝트 구상을 마쳤고 다음 전시를 통해 선보일 계획이다.

 

그녀는 “제주가 하루하루 변하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며 “예술을 통해 현재의 제주를 기록하는 것이 내 사명이다. 보는 이에게 진한 그리움과 향수를 선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지차여러가지공작소’에서 김 작가의 꿈이 영글고 있다. “있는 듯 없는 것 같은 공간을 만들 겁니다. 앞집 이모와 뒷집 삼촌이 놀러 오고 도민과 관광객이 지나다 들르는 곳이죠. 허름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울림과 진한 여운을 건네는 제주의 기억들이 담겨있을 거랍니다.”

 

이 서울 아가씨, 의외로 털털했다. 제주살이에 대한 체험담을 정감 넘치는 말투로 털어놨다. “예전에 제주 살 때부터 주위 분들이 살갑게 대해 주세요. 제주도민이 배타적이라고 하는데 전혀 못 느끼겠는걸요. 지금도 동네 분들이 가끔씩 들러 안부 묻고 반찬도 챙겨준답니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