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그림으로 소나무에 깃든 민족혼을 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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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화가' 신동철 화백...50m 화폭에 전국 대표 소나무 재현에 나서
   
'소나무 그리는 화가' 신동철 화백은 최근 지난 10년간 매달린 소나무 작업에 방점을 찍기 위한 역작을 준비하고 있다.지역별로 분포하는 대표 소나무와 유적을 붓으로 재현하는 이 작품에는 제주의 산천단 곰솔과 한라산, 목관아, 천지연.정방폭포 등도 포함된다고 한다.

“소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닙니다. 민족혼이 깃든 국보급 나무죠.”

 

‘소나무 그리는 화가’ 신동철 화백(56)은 소나무를 겨레의 정신적 표상으로 규정했다. “제주를 비롯한 전국의 소나무 숲이 재선충병으로 인해 붉게 변했을 땐 마음이 찢어졌다”는 그는 단호한 어조로 “소나무가 사라지면 민족의 자존심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술에 재능이 뛰어났던 신 화백은 가정 형편 상 대학 진학을 미루다가 스물셋에 중국 북경 중앙미술학원에서 유학했고 중국 진경산수화의 대가 가우복 선생의 첫 외국인 제자가 됐다.

 

신 화백은 ‘느림의 미학’을 주제로 나무들이 포함된 농촌 풍경을 주로 그리다가 약 10년 전부터는 소나무에 시선을 고정했다. 화단의 호평이 쏟아졌다. “신 화백의 소나무에 반하고 말았다. 말하고 웃고 떠들거나 침묵하는 소나무를 보게 된 것이다”(자유기고가 최영심), “소나무에서 웅혼한 자태가 살아 꿈틀대고 있다. 때로는 정겨움도 엿보인다”(시인 김택근)….

 

전남 완도군 고금도 출신인 신 화백은 대한민국미술대전과 세계평화미술대전, 통일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미술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달의 작가’에도 수차례 선정됐다.

 

신 화백은 서울과 경기도 양평을 오가며 작업하다가 지난해 3월 제주에 정착했다. 원래 그의 제주행은 아내 조정숙씨(53)의 췌장암 진단에 따른 요양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이젠 자신의 작품 활동을 위한 필수 사항으로 바뀌었다. 물론 아내 조씨의 건강은 많이 회복됐다.

 

그의 보금자리 위치는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마을회관 바로 옆. 3500㎡ 남짓한 부지에 60여 ㎡와 30여 ㎡ 규모 전시관 두 곳과 약 10㎡의 화실, 약 60㎡의 주택 등 아담한 건물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 작은 전시관은 카페 기능도 갖추고 있어 방문객이 찾아오면 신 화백은 이곳에서 차나 커피 한 잔을 대접하고 그림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며 환담을 나눈다.

 

이들 건물은 그가 땅을 매입할 때 이미 있던 것들이다. 그런데 소나무 작가의 공간이 아니랄까봐 건물 사이에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뿌리내리고 있다. 건물마다 외벽에는 신 화백이 그려놓은 벽화 속 소나무들이 당당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신 화백은 “제주 소나무는 해송이 주종이어서 적송이 많은 육지부와 솔숲의 양태가 전혀 다르다”며 “소나무들이 상대적으로 더욱 깊고 진한 생명력을 내뿜으며 검은 현무암과 붉은 송이, 곶자왈, 한라산 등 화산 폭발로 생긴 제주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쯤 되니 신 화백은 소나무와 대화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쏴~” 하는 싱그러운 봄바람에 소나무 가지들이 흔들리자 그는 손을 펴고 인사를 건넸다. “쟤네들이 날씨 좋다고 얘기하네요. 요즘 많은 친구들이 재선충병으로 죽자 마음 아프다고 말하고 있어요. 쟤들이 심기일전해 건강한 꽃가루를 많이 날림으로써 건강한 후손을 남겨 친구들의 빈자리를 메워야죠.”

 

제주 소나무들이 하나둘씩 그의 화폭에 기록되고 있다. 수 백 년 간 제주를 지키다가 재선충병으로 고사한 소나무 거목들도 신 화백의 붓질에 의해 되살아나고 있다.

 

신 화백은 탐라순력도에 등장할 만큼 오랜 수령을 자랑하다 끝내 재선충병을 이기지 못해 죽은 산방산 소나무를 비롯해 대정향교 소나무 등 고목(古木)을 중심으로 화폭에 재현하고 있다. 한경면 청수리 곶자왈 소나무와 남원읍 위미리 서낭당 소나무 등도 그의 작업 대상이다.

 

“소나무들에 대한 예술적인 추모와 복원 작업인 셈이죠. 파릇파릇 푸름을 자랑하든, 안타깝게도 죽어가고 있든, 이미 고사했든 철저하게 실경(實景) 그대로 화폭에 옮길 생각입니다.”

 

 

   

특히 신 화백은 전국 산천에서 수많은 소나무를 경험했지만 제주시 아라동 산천단 곰솔과 애월읍 수산리 곰솔은 영물(靈物)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자태가 당당한 것이 한국인의 기상과도 닮았습니다. 무엇보다 산천단 곰솔은 전국에서도 가장 크고 잘생긴 소나무로 8마리의 용을 보는 것 같아요. 보는 이를 압도하는데 여간한 사람은 나무의 기에 눌립니다.”

 

최근 신 화백은 가로 15m, 높이 3m의 화폭에 이들 소나무를 그릴 채비를 마쳤다. 또 지난 10년간 매달린 소나무 작업에 방점을 찍기 위한 역작(力作)도 그의 머릿속에 그려져 있다.

 

신 화백은 “가로 50m에 달하는 거대한 화폭에 한반도 백두대간을 따라 지역별로 분포하는 대표 소나무와 유적을 붓으로 재현할 것”이라며 “제주 대표인 산천단 곰솔에다 한라산, 목관아, 천지연·정방폭포 등도 포함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화실은 대작을 작업하기에 턱없이 좁은 탓에 조만간 텃밭에 가건물을 지은 뒤 곧바로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소나무 그림을 통해 그는 뭘 추구하는 걸까. 유독 소나무에 집착하는 이유는 또 뭘까.

 

신 화백은 “한국인 혼이 깃든 소나무를 그림으로 후세에 전하는 것이 내 임무”라며 “그것은 대한민국 정체성과 역사관, 민족성을 예술적으로 계승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나무에게서 맑고 푸른 기상과 담대한 기백을 배웠던 선조들의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당부와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정치판도 제발 소나무를 배워야 한다”는 비판도 보태졌다.

 

그는 제주를 향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고 난개발에 대한 일침도 가했다.

 

“제주는 말 그대로 보물이에요.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에서 에너지가 충전되고 곶자왈에선 정신이 맑아집니다. 물아일체의 경지에 빠지죠. 그런데 요즘 제주 자연이 무분별한 개발로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어요. 자연이 파괴되면 결국 사람도 죽는다는 순리를 제발 깨달아야 할 텐데….”

 

김현종 기자 tazan@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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