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초상화만 그리는 행복한 유배자
삶의 흔적에서 역사를 그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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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강형구
   
제주는 자유분방한 자신을 포용할 수 있는 안성맞춤인 곳이라며 제주살이를 '행복한 유배'라 말하는 서양화가 강형구씨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누구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꿈을 오랫동안 그리다보면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꿈을 간직한 사람은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기 몫의 행복을 느끼게 마련이다.


강형구 화가(61) 역시 ‘제주’라는 캔버스 위에서 어린 시절부터 갈망해 온 꿈을 완성시키기 위해 ‘행복한 유배’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200호(260㎝×194㎝) 이상의 대형 알루미늄 캔버스 위에 자신을 비롯한 유명 인물들의 초상화만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하다.  


그의 진가는 아쉽게도 국외에서 먼저 드러났다. 2007년 말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빈센트 반 고흐 블루’가 7억원에 낙찰된 것을 시작으로 그의 작품은 줄줄이 고가에 낙점됐으며 국내에서도 정가보다 몇 배를 상회할 정도로 미술품 수집가들에게 인기 있는 그는 ‘블루칩 화가’이다.


그런 그를 품기에는 한없이 작아만 보이는 제주를 왜 그는 여생의 동반자로 선택했을까.


“뭍에서 비행기로 움직이면 강원도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시간보다 더 짧다”는 그는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바위 위에서 작품을 구상하면 이보다 더 평화로운 곳이 없다”며 제주의 때 묻지 않은 풍경을 끊임없이 칭찬했다.


   
                                                         서양화가 강형구 작품

사실 그의 정착은 철저한 계획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인연에 의해 이뤄졌는지도 모른다.


제주시 탑동에 위치한 아라리오 뮤지엄의 전속 작가인 그는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의 배려로  3개월 동안 10여 점의 작품을 완성하고 갈 요량으로 발을 들여 놓은 이곳에서 정착의 수순까지 밟게 됐다.


“나를 찾는 곳이 많은 번잡한 곳에서 벗어나 더 좋은 시도를 통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팬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는 그는 “제주는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나를 포용할 수 있는 안성맞춤인 곳”이라며 제주와의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세계 스타 아이콘, 크리스티 인기 작가, 미친 열정가…. 현재 그의 뒤를 따르는 화려한 수식어들은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십수 년 동안 그가 감내해 온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법관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그는 소위 ‘배고픈 직업’에 대한 걱정으로 화가의 길을 반대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10여 년 직장 생활을 하게 됐지만 오히려 그때를 ‘안 맞아도 되는 나쁜 비’를 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한다.


“그 당시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난 이들이 정도(正道)라고 여기는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 젊은 시절의 열정을 낭비했을 것이다”는 그는 “직장에서의 10년은 꿈에 대한 갈망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의 시간으로 정말 열심히 보낸 인생에서의 좋은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유독 초상에 전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자화상을 그리며 시간의 흔적을, 세월을 담아낸다는 그는 “특정인들의 얼굴 속 주름 하나 하나에 삶과 시간의 흐름을 표현함으로써 그들이 살아낸 시대의 역사를 읽어가는 과정”이라며 초상화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드러냈다.


그는 이곳 제주에서 개인적으로, 그리고 작가로서 이루고자 하는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


“작가로서 화풍이 정해진다는 것은 굉장히 불행한 일이다. 70%의 실패를 감수하면서 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어야 내 그림을 사랑하는 관람객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다”는 그는 “이중섭·장리석 화가의 뒤를 이어 제주에서 새로운 미술을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정착 4개월 차인 새내기 제주 주민이지만 그는 이미 지역에서 일어나는 행사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해 이웃들에게도 인기다.


그가 보는 제주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서양화가 강형구 작품

“서울을 부러워하지 않고 섬 안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제주 사람들을 통해 강한 독립정신이 느껴졌다”는 그는 “특히 제주만의 언어인 방언을 잘 보존해 온 것도 존경받을 만하다”며 엄지손을 치켜 올렸다.


하지만 그에게도 제주의 젊은이들에게 안타까운 점이 있다고 했다.


그는 “1600년대 퀄퍼트(Quel peart)호가 발견했다고 해서 서양의 고지도에는 제주도가 퀄퍼트 아일랜드로 명명돼 있지만 이를 아는 젊은이들은 극히 드물다”며 “제주의 역사를 아는 것만이 제주의 자존을 지켜나가는 일이다”고 일침하기도 했다.


아직도 그림을 돈으로 환산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블루칩, 한때 ‘팔포(팔기를 포기’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돈보다 의지를 믿고 따랐던 작가, 인생의 반은 고생했지만 반은 영광속에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 강형구. 15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개인전을 열어온 그가 내년에는 아라리오 뮤지엄에서 제주 도민들도 대형 초상화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귀띔한다. 제주에서 1년여를 지낸 그가 그려낼 초상의 감정은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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