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아이들의 맑은 눈 보면 제주의 미래가 보여요”
(13) “아이들의 맑은 눈 보면 제주의 미래가 보여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연극인 이윤주

두 눈을 감고 있으면 모든 감각은 청각과 촉각에 의지하게 된다. 가만히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를 따라 한 발 한 발 걸음을 떼어 보면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 두려움으로 밀려오지만 그 공포는 잠깐이다. 더듬더듬 매만져지는 감각과 소리의 방향에 내 몸을 맡기는 순간 그 어둠 또한 내 것이었던 것처럼 금세 익숙해진다.


연극인 이윤주씨(38·연극놀이터 와랑와랑 대표)는 여느 예술인들처럼 제주의 바람이, 들판이, 하늘이 예뻐서 이곳과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니다.


늦게나마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찾고 싶었다는 그. 그는 인생에 잠시 찾아온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어디선가 비춰지는 희미한 불빛을 따라 큰 가방 하나 달랑 끌고 낯선 땅 이곳, 제주로 날아들었다. 2011년 8월,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의 일이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며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찾고 싶었다”는 그는 “제주는 육지와 떨어져 있지만 내가 살던 서울과 버금가게 도시생활이 가능한 곳이었다”며 대도시와 접근성은 약하지만 또 다른 ‘도시’로서 제주의 무한한 매력을 쏟아냈다.


그는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연극인이다. 자신의 재능과 관심 분야를 남들보다 조금 늦게 터득한 그는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로 재입학, 대학을 졸업하는 데만 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비롯해 일생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일들을 작품 속 캐릭터 연구를 통해 접할 수 있어 좋다는 그는 1999년 변방연극제 ‘멕베스는 잠을 죽였다’를 시작으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공후인 환타지’ 등 다수의 연극에 출연하며 관객들과 통(通)해온 영락없는 배우이다.


그렇게 그는 연극을 통해 새로운 인연의 끈을 잇기 시작하면서 제주 속으로 차근차근 들어왔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은 자신의 영역에서 중심의 자리에 서 있다.


제주에서의 새출발이 처음부터 녹록했을까.


“나에겐 ‘괸당’도 없는 낯선 곳이었는데 의외의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는 그는 “어느 곳보다 치열한 삶을 살고 있지만 낯선 사람들에게 선뜻 손 내밀어주는 이들 역시 제주사람이었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현재 그는 연극치료사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다소 생소한 ‘연극치료’는 참여자와 함께 상상하고 행동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의 상처와 불편함을 풀어냄으로써 치유와 성장을 돕는 일이다.


그는 14~16세 청소년들과 매주 토요일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새마을작은도서관에서 드라마놀이 및 극 만들기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응원하고 있다.


“부모님의 관심에 굶주린 아이들은 눈을 마주하고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는 그는 “내가 살면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공유함으로써 청소년들이 자신의 가치를 찾아 완전한 인격체로 자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꿈이다”고 말했다.


5년 전 그가 그리던 미래와 조금씩 만나가고 있다는 그도 제주의 젊은이들에게는 아쉬운 점이 있다고 직언했다.


“많은 예술인들이 제주에 정착하는 영향으로 구석구석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연들이 시도되고 있는데도 질(質)을 운운하며 타 시·도로 공연을 보러 다니는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그. 그는 “이들의 오감이 제주를 향할 때 비로소 제주의 문화가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해 있을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당장 이루고 싶은 소박한(?) 꿈이 하나 있다.


시간·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일을 할 수 그만의 공간인 ‘사랑방’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청소년들과 보다 더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교환해 보고 싶다고 한다.


자신을 과대평가 해주는 제주의 시선이 느껴져 스스로를 자극하며 발전하고 있는 연극인, 제주인들에게 받은 만큼 지역문화인으로서 그 값은 해야 한다고 믿는 예술인, 밝지만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들을 가슴으로 맞아주는 치료사, 이윤주. 단지 좋아서 시작했지만 연극을 통해 제주 청소년들의 길잡이가 되겠다고 자처한 그에게서 시원하게 뚫린 제주의 탄탄대로가 보이는 듯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