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는 4.3 영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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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부터 2년 여 동안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에서 4·3유해 발굴 사업이 이뤄졌다.

풍문으로 전해오던 암매장의 실체가 드러났고, 침묵의 감옥에 갇혀있던 많은 유골들이 햇살을 보게 됐다. 1949년 10월 1차 군법회의(군사재판)에서 사형수 249명과 1950년 8월 예비검속자 500여 명은 비밀리에 이곳에서 집단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영혼들은 반세기가 넘도록 구천을 떠돌아야 했다.

발굴 팀이 활주로 근처 보안 구역에서 매장지를 정확히 짚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강요돼 왔던 침묵을 깬 증언자들이 있어서다.

당시 부역에 참여했던 70대는 “군 트럭에 사람들이 실려 와서 계속 총살됐는데 피 냄새가 역겨워 구덩이에 들어 갈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조상 대대로 비행장 근처에 살아았던 주민들은 “마파람이 불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며 광기가 뒤덮였던 암매장 터를 알려줬다.

“10명씩 일렬로 세워놓고 차례대로 총살했다”는 증언과 일치하듯 구덩이 속에 유골은 포개진 상태로 첩첩이 쌓여 있었다.

유해 발굴이 진척되면서 언론 매체마다 ‘집단 학살’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이어 발굴 사업과 동시에 신원 확인을 위한 유전자(DNA) 분석과 유족들의 채혈이 진행됐다.

제주대 법의학교실 소속 연구원 등이 밤을 새며 유전자 대조 작업을 벌여 2010년 1차로 13명의 신원 확인자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 결과를 놓고 일부 유족들은 당황스러워 했다.

발굴 터에서 나온 382구의 유해 가운데 1차 감식에서 제주시 지역에 거주했던 북부예비검속(제주읍·조천면·애월면) 희생자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원이 확인된 13명은 모두 서귀포 3면(서귀·중문·남원면) 예비검속 희생자로 밝혀진 것이다. 원혼을 거두지 못한 유족들은 또 다시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4·3사업 가운데 최대 성과로 꼽혔던 유해 발굴은 세상의 빛을 보았으나 후속 조치인 신원 확인은 더디게만 진행됐다.

제주공항 등 8곳에서 이뤄진 발굴 사업이 마무되면서 모두 396구의 유해와 2357점의 유품을 찾아냈다.

하지만 지금까지 87구(22%)의 신원만 확인된 상태다. 나머지 309(78%)구의 유해는 황천을 건너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 사이를 맴돌고 있다.

최근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을 넋을 달래줄 방안이 제시됐다.

김우남 국회의원의 서면 질의에 대해 이완구 국무총리는 “309구의 신원 확인을 위한 예산 확보 등 필요한 지원을 해나가겠다”고 답변했다.

앞서 ‘단일 핵산염기 다형 현상’(SNP) 분석이라는 새로운 개인 식별 방법도 개발됐다. 이 방법으로 15구의 신원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4·3 영령들은 어둡고 차디찬 땅속을 벗어나 양지바른 곳으로 옮겨지게 됐다. 새로운 방식의 검사를 도입하는데 20억원 규모의 예산이 필요했는데 이 총리가 긍정적인 답변을 해 온 것이다.

그런데 행방불명자에서 제 육신과 이름을 찾을 수 있게 된 영령들이 원통한 마음을 풀지 못하고 통곡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지정한 4·3 희생자를 놓고 67년 전 벌어졌던 이념 대립과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4·3평화공원에 안치된 위패 가운데 ‘불량(부적격) 위패’를 가려내자는 희생자 재심사 논의가 제기되고 있어서다.

잠들지 못하는 영령들을 또 다시 세워 놓고 피해자와 가해자로 가려내는 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인가?

4·3 당시 군법회의는 공판조서 등 소송기록이 없는 가운데 사형선고를 내린 바 있다. 더구나 6·25전쟁이 발발하자 ‘예비검속’이라는 미명 아래 연행된 무고한 양민들이 총살을 당했다.

미생(未生)을 넘어 완생(完生)의 4·3의 되려면 정부 차원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해 주는 포석(布石)과 정수(正手)를 가장 먼저 둬여할 것이다.

좌동철 편집부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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