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요리사가 된 배우, 레시피에 제주의 가치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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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방중현
   

빌딩숲 사이로 느껴지는 답답함과 복잡함,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넘쳐나는 생동감…. 제주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도시의 풍경이다.


반면 섬은 여유와 느림, 편안함이 상징인 곳이다. 특히 낮은 지붕 뒤로 멀리 보이는 원색의 풍경은 보는 사람들에게 평온과 치유를 선물한다.


제주는 외지인들에게 낯선 곳이긴 하지만 ‘섬’이라는 이유로 그들 인생의 제2막을 맡길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배우 방중현(41) 역시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고 자연 그대로 보존된 제주의 모습에 반해 이곳에 정착한 문화예술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93년 모 기업에서 개최한 가수·전속모델 선발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 후 남궁연 프로젝트팀 객원 싱어, 이문세 전속 코러스로 활발히 활동하던 중 계획하던 음반 제작이 여의치 않게 되자 그는 연기자로 변신, 연극·단막극·독립영화에 출연하며 연기 실력을 탄탄히 다졌다.


“단 10분이라도 작품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독립영화 출연에 적극적이었다”는 그는 “상업화보다는 제작 의도에 중점을 둔 장르라는 점도 맘에 들었지만 특히 배우로서 경력을 쌓는 좋은 기회가 됐다”며 독립영화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17년 무명생활을 하던 그에게도 ‘쨍하고 해뜨는 날’은 찾아왔다. KBS2 주말연속극 ‘수상한 삼형제’(2009~2010년)와 각시탈(2012)에서 밉상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내며 시청자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그 후 올리브tv에서 방영하는 스타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키친파이터’에 출연, 출중한 요리 실력까지 인정받으며 ‘요리하는 연기자’로 거듭나기도 했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가 2013년, ‘제주살이’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뭐였을까.


“딸 라마가 동물과 곤충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연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흙을 만지며 자라게 해주고 싶었다”는 그. 그는 “아이가 자연과 교감하며 따뜻한 감성을 가지도록 도와줄 수 있는 곳은 제주밖에 없었다”고 정착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언제인가 지인이 제주에 이사온 라마에게 친구가 생겼냐며 누구냐고 물었더니 딸은 망설임 없이 ‘바다’라고 대답했다”며 “그동안 내심 걱정했던 ‘제주생활’가 기우였다는 걸 깨닫게 해 주는 아이의 강펀치였다”며 환하게 웃었다.


여행과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는 그는 천천히 그리고 남들보다 더 느리게 제주를 읽고 느끼며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서 그곳 주민이 돼 가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가족들과 직접 베트남을 찾아가 그곳에서 한 달여를 지내며 쌀국수와 반미(바게트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배워 와 얼마 전에는 옆 동네인 송당리 한적한 곳에 베트남 음식점 ‘라마네의식주’를 오픈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깨 너머로 보고 익힌 어머니의 레시피가 내 요리의 근간이 됐다”고 말하는 그는 “아내 역시 색감 선정에 민감한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보니 음식에 시각적인 효과를 더하는 기술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자연’이라는 그림자를 뒤따라 제주에 온 그여서인지 환경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다.


그의 가게 안에 걸린 대형 모빌이며 각종 소품들은 대부분 바닷가에 버려진 쓰레기들로 재활용해 꾸며 놔 보는 이들의 눈을 의심케 할 정도였다.


“누군가에게 더 이상 활용 가치가 없어진 쓰레기도 어떤 이와 만나느냐에 따라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다”는 그는 “3년 전과 현재 제주의 차이점은 ‘공사중’인 곳이 아주 많아졌다는 것인데 모빌처럼 보전과 개발도 균형과 조화를 이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는 ‘라마네의식주’가 문화를 이야기하는 소통의 ‘창고’로 이용되기를 바란다. 간간히 작은 이야기 콘서트를 마련해 지역주민·지인·팬들과 쉼 없이 교류하며 제주를, 요리를, 연기를 고민하고 싶어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취미로 하는 요리가 아니라 힘들지는 않은지 궁금했다.


“연기와 요리는 상당히 비슷하다. 하나의 캐릭터를 완성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펼치는 것은 음식에 천연조미료를 첨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그는 “난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늘 음식을 만들며 연기 연습에도 열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 살배기 아이도 몸집이 작은 친구라고 동등하게 여겨 주는 아빠, 매번 연기하듯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 무지 급한 성격을 지녔지만 아내의 말만큼은 잘 따라주는 자상한 남편, 제주의 자연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고민하는 배우, 방중현. 제주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제주의 가치가, 섬이 가지고 있는 지형적 특성이 오히려 그의 안에서 돋보이고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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