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앗간 떡 심부름 하던 소년, 日 식품사업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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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가업 이어 연 매출 100억엔 기업으로 성장...고향 제주에도 각별한 애정
   
홍성익 ㈜도쿠야마물산 회장은 어린 시절 재일제주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오사카 쯔루하시 이쿠노구 인근 조선시장 뒷골목에 다락방을 빌려 살았다. 당시 방앗간을 운영하던 할머니는 한복을 입고 동포들에게 한국식 떡을 만들어 팔았는데, 이 같은 모습을 보면서 홍 회장은 어릴 적부터 한국인이라는 민족 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

15살 때 현해탄을 건너 결혼을 한 후 시어머니의 방앗간 일을 도왔던 어머니는 1960년대 중반 조선시장 내에 14~15평 규모의 가게를 얻어 송편과 기증편, 찐빵 등을 만들어 파는 떡집을 차렸다. 이 떡집이 도쿠야마물산의 모태인 ‘도쿠야마 상점’이다.

도쿠야마 상점은 각종 잔치와 제사에 올리는 떡을 팔았는데, 민족 명절인 설과 추석 대목에는 문전성시를 이루는 등 장사 잘 되는 떡집이었다. 도쿠야마 상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동포 사회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고, 기차 편을 이용한 택배 등을 통해 일본 전역으로 떡이 팔려 나가기도 했다.

당시 기차역까지 떡을 갖다주는 심부름을 했던 홍 회장은 “도쿠야마 상점 당시 연결됐던 각지의 판매 거래처들이 나중에 전국 단위 식품 유통망을 구축하는데 상당한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도쿠야마 상점은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시대 변화에 따른 수요 및 매출 정체로 전환점을 맞게 된다. 고민하던 홍 회장의 아버지는 도쿠야마물산을 만든 후 1986년 가래떡 포장 과정에서 곰팡이를 없앤 완전 포장기술 개발과 함께 냉장 생산 자동화 라인을 갖춘 공장을 시설해 유통업에도 뛰어드는 등 과감한 변신을 꾀했다.

이에 홍 회장도 다니던 학교 미술교사직을 그만두고 아버지 일을 도와 슈퍼마켓에 생산 제품을 납품하는 식품 유통업에 뛰어들면서 기업가로서의 경영 감각을 익혔다.

   
(사진 왼쪽부터) 일본 오사카 이쿠노구 코리아타운 입구에 자리한 반가식공방, 도쿠야마물산은 자체 생산한 떡류와 냉면을 비롯해 한국에서 수입한 식품 등을 판매하면서 일본에 한류 음식문화를 전파하고 있다.도쿠야마물산 직매장 코너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주 특산품.
▲식품 사업가의 발을 딛다

할머니의 방앗간과 어머니의 떡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홍 회장은 예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이에 조선대학 미술과에 들어가 졸업 후에는 조선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했다.

가업에 참여하기 위해 교사직을 그만둔 후에도 작품 활동에 주력해온 홍 회장은 일본에서 개인전을 갖는 등 능력있는 유망주로 인정받았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의 전시 제의를 받아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고국을 처음 방문하게 되고, 이 때부터 사업가로 변신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고국에서 롯데월드 개관 기념전 등의 전시 및 대학 강의를 하던 홍 회장은 우연찮게 음식점 사업을 계획하게 됐고, 이에 밀가루 반죽에 고기와 야채 등을 넣고 철판에서 구운 오사카의 대표 요리인 ‘오코노미야키’ 레스토랑을 국내 처음으로 열었다.

대구와 서울 대학가에서 독특한 맛과 감각적인 매장 인테리어를 선보인 오코노미야키 레스토랑은 일본인도 찾아올 정도로 성공하면서 프랜차이즈점 사업으로 확대됐고, 이와 맞물려 국내 유명 식품업체와 소스 판매 업무협약까지 맺는 등 탁월한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이 과정에서 홍 회장은 일본에서 아버지와 부인이 운영 중인 도쿠야마물산 사업과 연계해 떡국과 냉면 등을 개별 포장하는 자동화 생산시설을 갖춘 덕산식품 공장을 한국에 설립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계획해 사업에 매진했다.

크고 작은 난관 끝에 하루 8t 생산능력 등을 갖춘 공장이 완공돼 제품 생산에 들어갔다. 홍 회장으로서는 ‘재일동포로 태어나 아버지 대를 이어 만든 제품을 조국에 선보이게 됐다’는 현실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이 벅차 오르는 순간이었다.

▲예기치 않은 위기, 고비를 넘다

하지만 완전 포장기술로 생산된 제품에 하자가 생겨 백화점 등에 시판된 제품들이 3일여 만에 전량 반품되면서 곧바로 위기로 내몰렸다. 포장 설비 라인이 균일하지 못해 완전 포장에 미세한 흠집이 생기면서 생산된 제품이 변질돼 막대한 투자에 따른 빚 부담을 떠앉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에서 생산된 포장 설비의 핵심 기술부품이 통관 문제 등으로 아예 수입하지 못하게 되면서 막막함은 더했다. 하지만 거듭된 실패에도 주저앉지 않고 시설 보완 작업에 매진했고, 이에 6개월 여 걸친 라인 보완 끝에 완전 포장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면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홍 회장에게 “그동안 사업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역경”이었던 당시 시련은 그의 기업가 인생에 있어 값진 밑거름이자 이후 일본 시장에서 한국식품 유통업으로 탄탄하게 성장하는 디딤돌로 작용했다.

이후 한국 공장에서 생산된 냉면 제품은 1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보일 정도로 잘 팔리면서 시설을 늘렸고, 최대 고비를 넘긴 홍 회장은 한국 사업을 정리하고 1994년 도쿠야마물산 사장을 맡으며 본격적인 한국식품 유통사업가로 나섰다.

일본으로 돌아간 홍 회장은 그동안 쌓아온 기업 노하우를 살려 도쿠야마물산 제품 뿐만 아니라 김과 유자차, 막걸리, 라면 등의 한국식품을 일본시장에 판매하는 유통망 구축을 본격화했다.

특히 일년 만에 도쿄에 지사를 설립한 도쿠야마물산은 이후 계열 식품업체를 잇따라 설립하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무엇보다 홍 회장이 미적 감각을 살려 만든 한국식품 홍보 TV 이미지 광고는 교민들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자긍심을 살리는 내용으로 만들어져 상당한 반향과 함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일본에 한류 음식을 알리다

홍 회장은 일본시장에서 사업하면서 한국식품의 인지도 상승을 대비해 판로망 확충과 유통 품목 다변화 등에 주력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에 한국식품이 주목받기 시작했던 경험과 반가정식 식품 선호 트렌드 추이 등에 따른 틈새시장을 겨냥한 경영 전략이었다.

1995년 한신 대지진이 발생해 막대한 재난 피해를 입을 당시 홍 회장은 인지도 있는 주력 제품인 떡국을 보내 이재민들에게 끓여주는 등 정성을 쏟았다. 이 같은 온정은 이후 고베 생협에서 떡국 제품을 취급해 일반인들에게 인기 리에 판매되는 판로망 확충으로 이어졌고, 한국 음식문화를 알리는 데도 도움을 줬다.

이어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와 한국 드라마 인기 등에 힘입어 그동안 한국인 차별을 상징하던 음식이었던 김치와 고추장 등에 이르기까지 인기리에 팔려 나가면서 한국식품이 일본인 가정 식탁에도 오르는 변화를 가져오게 됐다.

이 같은 수요 증가와 맞물려 도쿠야마물산은 반가정식 식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 4곳과 직영점 및 판매점, 음식점 등으로 사업망을 확대, 현재 200여 명의 직원들이 연간 70억엔~100억엔 대의 매출을 올리는 한국식품 유통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성공신화를 일궈냈다.

▲그리운 고향 제주를 바라보다

“기업 이익보다 할머니 때부터 이어져온 한국의 문화와 음식들을 제대로 소개하고 교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싶었다”는 홍 회장은 할아버지의 고향 제주에 대해서도 따스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이미 제주도 해외통상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도내 기업과 일본 바이어간 가교 역할을 해내고 있다. 또 오사카 신사이바시 점포를 제주도에 무상 임대해 제주 특산품 홍보판매장으로 이용할 수 있게 지원하는가 하면 제주산 월동무를 비롯한 농산물 식재료도 수입하는 등 고향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아들에게 회사 경영을 맡겨 제주에 기여하는 여러가지 사업도 구상 중이다. 예를 들어 일본 홋카이도에서 유명한 명품과자 ‘시로이 코이비토(하얀 연인이라는 뜻)’와 같이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식품을 만들어 고향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을 구체적으로 피력하기도 했다.

고향의 뿌리를 잃지 않고 부모로부터 이어져온 고향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세계 속의 제주인 홍성익 회장. 그가 앞으로 ‘글로벌 제주’를 위해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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