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자연과 예술, 사람이 함께하는 제주를 위해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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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곤 섬아트문화연구소 소장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100% 가운데 보이는 것이 97%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3%라면 예술은 보이지 않는 3%의 세계를 표현하는 기술입니다. 예술가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표현하는 정신적 기술자라고 할 수 있겠죠.”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양화가로 활동하던 김해곤 섬아트연구소장(50).

최근 몇 년 사이 쇄락하는 도시에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고 있는 공공미술프로젝트, 정확하게 표현하면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사무국장이자 총괄감독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을 돌아다니며 미술의 대중화를 실천하고 있는 주인공이다.

 

미술인들에게는 일자리를, 일반 시민들에게는 미술 향유권을 제공한 마을미술 프로젝트가 문화관광체육부 산하에 자리를 잡은 지 올해로 7년.

 

김 소장은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해 지난 7년 간 전국 76곳을 대상으로 예술 작업을 해 왔으니 공공미술,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산증인이다.

 

제주지역에서는 제주시 이도2동, 봉개동을 비롯해 서귀포시 대평리와 작가의 산책길인 ‘유토피아로’가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부산 감천문화마을이 대표적인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성공작으로 꼽히고 있는데 그곳은 피난민촌이라는 아픈 역사적 콘텐츠와 강력한 스토리에 예술이 더해지면서 문화재생의 가치가 커졌지만 사실 작품성으로 보면 서귀포시의 유토피아로가 전국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히고 있지요.”

 

서귀포의 ‘유토피아로’는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예술이 더해지면 세계 어느 곳도 제주를 따라 올 곳이 없다고 믿는 그에게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수년간 해 온 보람이다.

 

이로써 그가 진정으로 실현하고자 했던 미술의 대중화이자 미술의 대안공간인 ‘지붕 없는 미술관’이 제주에도 멋스럽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전라북도 남원이 고향인 그가 13년 전 그의 정신적인 삶의 기반을 제주섬으로 옮겨 온 것은 예술이 작가 혹은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보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미술 대중화운동의 실천이었다.

 

특히 그는 1990년대 전시관이라는 공간에서 소수 계층이 향유하는 미술이 아니라 대중에게 다가가는 미술을 고민하는 젊은 작가들과 미술과 시민의 쌍방향 소통을 추구하며 21세기 청년작가협회를 창단했다.

 

그 모임의 초대 회장을 맡은 그에게 깃발이란 수단은 미술 대중화를 위한 문화운동의 매개체로 최고의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는 1998년 회원들과 서울 한강에서 ‘깃발 전시회’를 처음 열었다.

 

그림을 그린 깃발을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공원에 세워놓음으로써 시민들에게 예술과 호흡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때 시작한 깃발예술제는 그 후로도 전국 각지에 흩어진 회원들을 통해 맥을 이어갔고 그 역시 깃발을 움직이게 하는 바람이 유명한 제주도로 흘러오게 하는 첫 번째 이유가 됐다.

 

“1989년 학원에서 강사를 하던 시절 우연히 제주에 올 기회가 생겼어요. 당시 어디 돌아다니는 것이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라고 느낄 때였는데 제주에 왔다 간 이후로 이유없이 몸이 아프더라고요. 그 이후로도 3~4회 제주를 다녀갔는데 그 때마다 똑같이 그랬죠.”

 

그때 그는 이것이 향수병이란 것을 깨닫는다.

 

“육체적 고향과 정신적 고향이 분리될 수 있겠구나를 느끼는 순간 신기하게도 아팠던 것이 싹 사라지더라고요.”

 

이후 그는 틈나는 대로 제주를 찾아와 미친듯이 작품 소재를 찾고 스케치를 했다. 그 이후에 만난 지금의 ‘인생 반쪽’이 제주 출신이라는 것도 그가 제주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제주도가 그의 운명’이라는 것에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된다.

 

2000년 강원도 삼척탄광공업소의 빈 사택들을 미술로 채우는 설치작업을 하고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공식문화행사로 서울 상암동 옛 쓰레기 매립장 일대에서 대규모 깃발축제를 진행한 그는 2003년 제주에서 미술 대중화의 실천을 시작했다.

 

특히 그는 2005년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서귀포시 송악산 진지동굴 일대에서 진행했던 바람예술축제를 잊지 못한다.

 

진지동굴에서 개최하기까지 고생도 많이 했지만 많은 세계 여러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미술의 대중화에 응원을 보내줬고 그런 응원이 미술 대중화 운동의 자양분이 돼 지금껏 그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이 그의 미술 대중화 운동에 대해 미술을 싸구려로 매도하는 것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미술은 시민들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는 그의 굳건한 철학은 쉬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지금까지 그랬듯 쉬지 않고 시민들의 가슴속에 잔잔한 파장이 될 ‘예술 깃발’을 항상 만들어 낼 것이고 그 깃발은 ‘바람 부는 제주’에서 그 가치가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전국을 다니다 보면 제주는 서울 다음으로 역동적인 기운이 넘치는 곳이에요.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제주에 문화색을 덧입혀 세계 최고의 지상낙원을 만들고 나면 언젠가는 평양으로 가서 다시 ‘문화 게릴라’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김씨는 제주에서의 문화 게릴라 13년이 신나고 즐겁고 보람되기 때문에 결코 지치지 않는다는 낙천가이자 에너지 넘치는 예술가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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