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은 사랑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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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닷새간 감기에 걸려 누웠지만 오늘은 건강해져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팔아 돈과 선물을 잔뜩 사 갈 테니 건강하게 기다려다오.”

이중섭 화백(1916~1956)이 일본어로 쓴 그림 편지는 천재 화가 이전에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애틋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1·4후퇴 때 원산에서 탈출, 부산을 거쳐 1951년 서귀포시 정방동 4.6㎡(1.4평) 쪽방에 정착한 화가와 아내, 어린 두 아들은 함께 웃으며 가장 행복했던 11개월을 보냈다.

짧았던 행복도 잠시, 고구마나 게를 삶아 먹으며 끼니를 때웠던 그의 가족은 생활고로 부인 이남덕(일본명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가 두 아들을 데리고 1952년 일본으로 가면서 생이별을 했다.

그림 편지에는 또 이렇게 썼다. “조그만 서로 더 참고 견딥시다. 나중에 둘이 사이좋게 추억을 이야기합시다.”

그러나 이들 가족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고, 화가는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홀로 생을 마감했다.

‘파란 게와 아이들’, ‘물고기와 아이들’ 등 걸작은 그의 가족이 쪽방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잤던 가장 따뜻했던 생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담뱃갑 은박지에 그린 ‘은지화’는 가난이 만들어낸 위대한 명작으로 남았다.

내년은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서귀포시는 지난달 도내·외 예술인 135명으로 구성된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앞서 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미망인 이남덕 여사(94)를 두 차례 만나서 기념사업에 대해 설명했다.

40년의 짧은 생애 동안 그려낸 300여 점의 불후의 작품을 주제로 기념사업을 치러내야 할 서귀포시는 최근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지난 6일 서울 현대화랑이 미공개 편지화 20여 점과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은지화 3점을 일반에 처음 공개해서다. 전시회 주제는 ‘이중섭의 사랑, 가족’, 그동안 이 화백이 아내와 아들 태현·태성과 주고받은 편지가 모두 몇 점인지는 이남덕 여사가 전모를 밝히지 않아 안 개속에 싸여있었다.

개인 소장가들 수중에 들어가 학계나 화랑가에서도 실체를 몰랐던 미공개 편지를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이 전국 곳곳의 소장가들을 직접 찾아가 설득한 끝에 입수해 전시회를 열었다.

극한의 가난과 병고 속에서도 간직했던 거장의 뜨거운 인간미와 가족애가 60여 년 만에 처음 공개됐다.

그림 편지에는 두 손을 꼭 잡은 단란한 가족의 모습과 편지 여백에 어린 두 아들을 위해 물고기와 게 등 익살스런 그림을 그려넣었다. 고단한 현실에서도 자식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듬직한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편지에 그린 게와 물고기는 이 화백이 서귀포 피난시절 자주 그렸던 대표적 캐릭터다.

이와 함께 지난달 일본 도쿄에선 사카이 아츠코 감독(46)이 제작한 다큐 영화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이중섭의 아내’가 개봉됐다.

지난해 9월 서귀포시를 찾은 사카이 감독은 “시대와 국적을 뛰어넘는 영원한 사랑을 알리려고 했다”며 제작 배경을 밝혔다.

80분짜리 영화에는 이중섭미술관과 가족이 함께 살았던 초가, 자구리 해안 등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내년에 열릴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어떻게 그려야할지 고민해왔던 서귀포시가 이제 답을 찾았다.

늘 궁핍해도 재회를 손꼽아 기다리며 서귀포에서 11개월을 보냈던 비운의 화가가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가족을 향한 사랑이었다.

<좌동철 사회2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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