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버지처럼 남을 위해 봉사하는 구세군이 될테야.’

열 다섯살 까까머리 중학생이 마음 속으로 품었던 꿈은 화려하지도, 거대하지도 않았다. 자신보다 남을 위한 삶을 선택한 이 중학생의 롤모델은 다름아닌 35년간 구세군으로 활동한 아버지였다.

어느덧 2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2014년의 끝자락, 중학생 시절을 회상하던 그는 “어려운 일이지만 만족감과 보람을 느낀다”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이번 연말에도 어김없이 빨간 자선냄비와 함께 ‘사랑의 종소리’를 울리고 있는 유정훈 구세군제주영문 담임사관(42)의 얘기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그는 서울 복지관에 들어가 4년간 실무 경험을 쌓았다. 이후 구세군사관학교에 들어가 2005년 2월 임관해 본격적인 구세군 사관의 길을 시작했다. 하지만 경제적 형편은 물론 정신·육체적으로 고된 길을 걸어가야 하는 구세군 아들을 묵묵히 지켜보는 부정(父情)은 기쁨에 앞서 걱정이 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걱정처럼 봉사활동은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임관 후 전남·충남 농어촌 지역 노인복지관 등에서 갖가지 궂은 일을 이겨내야 했으며 경기도 소재 알코올중독자 재활시설에서는 어릴 때부터 술독에 빠져 단기 기억상실 증세까지 심각한 절망에 놓인 환자들을 달래며 새로운 삶의 희망을 만들어줘야 했다.

유 사관은 “한때 주민 민원으로 재활시설을 옮겨야 하는 위기까지 있었지만 신앙심을 갖고 꾸준하게 모든 정성을 들이고 교감을 가지다 보니 인정을 받게 되더라”며 “사회로 돌아가는 재활자들이 십시일반으로 화장품을 사줬는데, 잊을 수 없는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유 사관은 2011년 11월 당시 투병생활을 하던 제현우 사관의 후임으로 제주와 인연을 맺고 4년째 구세군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초등학생 공부방과 청소년 지역아동센터, 무료 급식, 제주시기초푸드뱅크 등 소외계층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직접 돌보는 여러 사업을 총괄하면서 직원 및 사회복지사 등과 함께 눈코 뜰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는 단정한 남색 구세군복으로 차려입었다. 올해 마지막 날까지 제주국제공항 등에서 종소리를 울리며 자선냄비 거리모금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올해 어려운 체감경기 상황에서도 작년 수준으로 모금했다”며 “아이들의 저금통에서부터 은행봉투에 담긴 5만원짜리 묶음 금일봉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성금들이 모아져 그늘진 이웃들의 마음이 넉넉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는 이어 “사회 양극화 및 경제적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협동조합이나 착한 가게 등이 활성화됐으며 한다”며 새해에는 모든 이웃들에게 행복의 손길이 이어지고 희망의 싹도 소중한 결실을 얻을 수 있도록 해 달라며 두 손을 모았다. <끝>